[경일포럼]3·1운동과 이완용, 윤치호, 윤석열
[경일포럼]3·1운동과 이완용, 윤치호, 윤석열
  • 경남일보
  • 승인 2022.03.2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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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금년은 3·1운동 103주년이다. 독립협회 전·후임 회장이었던 친일정치인 이완용과 친일지식인 윤치호는 3·1운동을 비난하였다.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각계 인사들의 참여를 위해 사전에 손병희는 이완용에게, 최남선은 윤치호에게 참여를 권유했다.

이완용은 한일합방 조약에 서명하고 1910년 백작의 작위를 받았고, 3·1운동 이후에는 후작으로 승작된 인물이다. 손병희는 은밀히 이완용의 집을 방문하여 거사 계획을 설명하고 민족대표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이완용은 “나는 2천만 동포에게 매국적이라는 이름을 들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제 새삼스레 그런 운동에 가담할 수 없소이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하였다. 3·1 만세운동이 격화되자 이완용은 3월 8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황당한 유언(流言)에 현혹치 말라’는 글을 썼다. 그리고 한 달 후에는 3·1운동에 대한 비난과 참여자들에 대한 경고문을 4월 5, 9일과 만세운동이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던 5월 30일 세 차례에 걸쳐서 매일신보에 발표하였다. 경고문에서는 ‘3·1 운동은 불순한 세력이 선동한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말던 너희의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포기해라’고 했으며 심지어 3차에서는 ‘일본 군대가 움직인다. 내 말이 맞지 않는가? 그러니 제발 가만히 있으라. 일본은 우리와 동조동근(同祖同根)이다. 우리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치호는 1880년대에 벌써 개화의 선구자이자 일본, 중국, 미국에 유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1월 29일, YMCA 사무실로 육당 최남선이 찾아왔다. 파리평화회의에 조선인 대표를 파견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조선 독립을 위한 선언에 참여하기를 권유했으나 54세의 윤치호는 거절했다. 그 날짜에 쓴 일기에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3월 1일 윤치호는 갑자기 창문 밖이 소란스러워짐을 느꼈다. ‘탑골공원 쪽에서 만세 소리가 빗발치고 시민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 밀려왔다.…소년들은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 하에 불을 보듯 뻔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하였다. 3월 2일자의 일기에서는 학생들을 앞세운 뒤, 만세 대열에서 슬그머니 빠졌다면서 종교계 인사들을 음모꾼이라고 비난했다. 학생들의 소요는 무단통치를 연장시킬 뿐이라는 게 윤치호의 생각이었다. 3월 7일, 윤치호는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강자와 약자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 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국내에는 이완용처럼 동조동근론에 사로잡혀 일본 천황을 섬기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치호처럼 적자생존을 설파하는 사회진화론에 빠져 일본에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식으로 친일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당선자는 나름의 논리에 근거하여 선거기간 중에 선제공격을 하고, 사드배치를 늘이겠다고 했다. 검찰의 예산을 독립시키고, 최저임금제는 폐지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즉문즉답이어서 추가로 정확한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앞으로 5년간 통합보다 분열이, 화해보다 갈등이 심해질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이 국민 신뢰에 보답하지 못하면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도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지난 3월 10일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북대화의 문을 언제든 열어두겠다고 했다. 3·1운동의 부름을 외면한 이완용, 윤치호와는 정반대로 기후위기와 분단시대 극복이라는 이 시대의 부름에는 적극 호응하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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