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훈장(勳章) 잔치, 그만 할 때 됐다
[경일시론]훈장(勳章) 잔치, 그만 할 때 됐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3.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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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정승재

중학교 졸업을 앞둔 때였다. 다정다감하셨고, 고매한 인격에 교과목을 넘는 풍부한 식견을 가지신 과학선생님께서 던진 한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상장! 그거 빡빡하고 두꺼워 화장실에서 사용도 못한다” 졸업생이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수여하는 각양의 상장을 받는 우리들의 다소 흥분된 태도를 두고 일갈하셨다. 우수한 업적을 남기거나 타의 모범을 보인 사람에게 주는 상(賞)의 의미를 모르시고 한 말씀이 아니다. 적절한 상을 통해 학업장려와 결과물에 대한 칭송의 긍정 취지를 간과하는 분이 결코 아니셨다. 상이 흔해서는 안되고, 그 상으로 본분을 망각하면 곤란하다는 훈시임을 한참이 지난후 깨달았다.

혹, 여기서 빡빡한 종이와 화장실의 연관은 뭘까? 풍요를 달고 사는 지금의 젊은이는 궁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30~40년전, 그 때를 산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일로 부언하지 않아도 될 일 같다. 아무튼 화장지의 발명, 사용으로 청결 수준이 엄청나게 상승한 것은 불문가지다. 인류 수명을 최소한 2~3년은 연장시킨 기여가 있을 터이다.

정해진 직무가 끝나가는 대통령의 이른바 ‘셀프 훈장수여’ 건으로 말이 많다. 당사자는 좀 억울해 할 일이다. 대통령으로 퇴임하면 법률에 근거하여 최고등급인 무궁화대훈장을 받도록 하는 조문 때문이다. 상훈법 제 10조에,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의 최고 훈장으로서 대통령에게 수여하며’로 명문하고 있다. 국민훈장을 포함한 다른 11종, 각각에 5단계 훈격(勳格)이 붙은 모두 50여개 종의 훈장 수여에는 간단치 않은 추천 형식과 심사과정이 필수다. 이와 달리 별도의 심사없이 강제하여 주는 것이 무궁화대훈장이다. 따라서 수여를 거부하면 위법이라는 해석을 낳게 한다. 다만 배우자까지는 수여를 강제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이번 대통령에 더하여 배우자까지 주고 받는 일은 또 다른 평가가 있을 만 하다.

한해 동안 정부가 주는 훈장 수여자가 2만명이 넘는다. 국가발전에 기여와 공로가 뚜렷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단다. 그중 단연코 많은 비중이 공무원이다. 전체 약 8할 정도의 비율이다. 서훈은 중앙부처의 장, 장관급 인사가 추천하여 행정안전부서 엄중한 심사과정을 거치고 국무회의서 최종 의결한다. 근무 연한이나 직급에 따라 훈격이 다르다. 예컨대 대학총장의 경우는 근정훈장의 최고급인 청조근정훈장을 받지만, 초·중등 교사로 아무리 오래 봉직해도 그 ‘청조급’ 수여는 불가능하다. 4단계 아래, 최하위 등급인 ‘옥조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장관을 지내거나 청와대 등 권력기관 출신 공무원은 근무연한과 무관하게 최고급 훈장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재임기간이 5개월 정도에 불과한 공무원에게 훈장을 결정한 전례도 있다. 당연히 권부인 청와대의 의중이 실리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못된다.

훈장 수여에 따른 수혜도 적지 않다. 이번에 화제가 된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훈장 제작비만 억대가 넘는다. 배우자 몫까지 더해서 그렇다. 다른 훈장 제작비도 흔히 상상하는 시중의 상거래 비용 수준을 훨씬 넘는다. 훈장의 종류와 그 각각의 격에 따라 다양하지만, 금전적 지원도 있다. 생활비, 양육비, 장학금, 공직 인센티브 등 적지 않은 혜택이 본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제공된다.

상훈제도,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 힘들지만 일제(日帝) 잔재 흔적이 다분하다. 일정 때 도입된 이유가 그렇다. 역설적으로, 일본은 4종의 훈장만이 있다. 과거, 공직의 박봉과 멸사봉공 직무 특성을 고려하여 특별한 앙양책이었다. 지금의 현실과는 판이하다. 공무원이 ‘얇은 지갑’의 상징도 아니며, 현직, 퇴직 이후도 최고의 직장인으로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별로 없다. 누리는 것도 그렇다. 상훈법 개정을 포함한 전면 수술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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