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우리 옆에 있다가 간 성자
[경일춘추]우리 옆에 있다가 간 성자
  • 경남일보
  • 승인 2022.03.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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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 경상국립대학교 교육혁신처 실장
박정하 경상국립대학교 교육혁신처 실장


시내에 새로 생긴 요양병원이 있었다. 그 병원에는 간병 보호사가 거주하며 여러 어르신을 돌보는 병실이 있었다. 막 입원했던 초기에 엄마는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그 병원에서 보조를 받으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줄 알았다. 그 기대는 우리의 바람일 뿐이었다.

종합병원은 장기입원을 하려면 주기적으로 옮겨야 했다. 거기서 개인 간병사를 고용했으면 더 나았을까. 우린 인생에서 처음 접하는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우왕좌왕 다 보냈다. 다섯이나 되는 형제자매라 해도 생활을 접고 직접 부모님을 돌볼 여건들은 되지 못했다.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갈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았을 때다. 어느 날 엄마의 작은 침대 옆에 모로 누웠다. 엄마의 두 팔에 내 어깨를 들이미니 들썩이는 웃음이 어깨를 타고 전해져 왔다. 엄마가 나를 보듬어 주시게 만든 것이다.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런 추억이 꼭 한 번이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그러셨다. “이제야 말이지만 너희 아버지가 참 얄궂었네라.” 기억이 흐릿하던 모친이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셨다. 초 저녁잠이 많아서 저녁 드시면 곧 주무시던 분이 아이들 학교 돌아오는 시간이면 ‘일정심’하고 일어나셨다 한다. 그러고는 상을 펴고 안경을 쓰고는 글을 쓰셨다고. 그 말에 엄마와 나는 커다랗게 웃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것이 있었다. 단체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아침에 도시락을 두 개씩 챙겨 학교에 가면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집에 오면 우리는 안방 문을 열고 차례차례로 인사를 했는데 나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방 가운데에 앉아 한자를 쓰고 계셨다. 그것은 몸으로 보여주신 우리 아버지의 교육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아버지는 늘 그렇게 한자를 쓰셨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이름과 주소 본적의 기초 한자를 가르쳐 주셨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알파벳을 가르쳐 주셨다.

몰랐다. 아이 한 명에 도시락 2개씩을 싸려면 6개가 되었고 한밤중에 빈 도시락을 풀면 설거지가 수북했다는 것을. 엄마는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그 수고로움을 다 하셨다. 아무리 종종거리며 부지런히 산다고 해도 그 어른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한두 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 절감한다. 부모님은 정녕 우리가 몰랐던 우리 옆에 있다가 간 성자가 아닐까. 때늦은 깨달음이다. 부모님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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