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대 (수필가)

올해도 제대로 봄을 맞지 못했다. 꿈꾸는 봄을 맞으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모르겠다. 도심의 빌딩 속에서 고립과 단절로 맞는 봄은 봄이 아니다. 돌담 위에서 새끼염소 천방지축 까불대고 하늘 맴도는 솔개 무서워 짚 덤불 뒤적이다 어미닭 날개 밑으로 병아리 숨어드는 곳에 오는 봄이라야 제대로 된 봄이다. 잊힌 고향의 봄날은 햇볕 바른 곳에 지푸라기 두툼히 깔고 한가롭게 누운 소가 쏟아지는 봄 햇살이 눈부셔 눈감은 채 연신 되새김질을 했었다. 소도 향긋하고 푸릇한 봄 냄새를 탁 트인 마당가에서 만끽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신선한 흙냄새,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코끝을 스치는 온갖 꽃들의 향기만으로 겨우내 웅크렸던 몸이 봄 기지개를 켜지는 않는다. 봄은 눈과 코, 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겨울동안 무뎌졌던 입맛을 찾는 것이 제대로 된 봄맛이다. 봄맛은 아릿하고 쌉싸름한 맛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쓴 맛에 가까운 봄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왜 사람들이 쓴맛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인생 쓴맛을 느껴 입맛도 쓴맛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봄나물은 대체로 쓴맛이 있다. 씀바귀가 그렇고 엄나무 순이나 오가피 순 또한 쌉싸름한 맛이 주다. 쓴맛이 나는 이유는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 같은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란다. 봄에 입맛이 없고 나른하며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면서 필요한 것이 봄나물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산나물이다. 산나물은 마음에 환희요 몸에 생명이다. 백여 가지가 넘는 온갖 산야초 새싹을 따다가 볶고 덖고 말려 백초차를 만들며 지리산 기슭에서 신선처럼 산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모든 봄 새싹은 약초라 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가난 속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왔던 우리의 선인들이 어렵사리 살아남은 것도 필경 이 골짝 저 능선에서 뜯어다 먹었던 봄맛, 산나물 덕이었을 터다. 지금 시장에 가면 갓 뜯어온 산나물이 한창이다. 갇히고 닫혔던 몸에 봄맛을 가득 넣어주는 것은 어떨까. 보리쌀이 다문다문 섞인 갓 지은 밥에 봄 냄새 가득한 산나물을 푸짐하게 얹어 볼이 미어지게 먹으면서 코로나에 지친 몸을 추슬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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