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규제개혁의 진짜 해법은 ‘작은정부’
[경일시론] 규제개혁의 진짜 해법은 ‘작은정부’
  • 경남일보
  • 승인 2022.04.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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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이 지난 20일 당선 후 두 번째 지방나들이에서도 규제개혁을 거듭 강조했다. 전북 전주의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임기 중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풀겠다. 공무원들이 앉아 따지는데 누가 돈 들고 기업하러 들어오겠느냐”며 “우리 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우리나라에서 마음껏 돈 벌 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이다. 선거 기간부터 해온 말이지만 취임을 앞둔 시점의 발언이어서 새삼 눈길을 끈다.

규제개혁은 민간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의 완화를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각종 제한을 풀어 기업 활동을 쉽게 한다는 뜻이다. 공장 하나 지어 가동하기까지 수십 군데서 복잡한 인·허가 도장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규제는 원성을 넘어 한 사회, 크게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온 지 오래다. 때문에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도로 위의 전봇대’라며 이를 뽑아내겠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톱 밑의 가시’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17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하며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규제샌드박스란 신제품, 신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모래 놀이터 같은 ‘규제 프리존’에서 새로운 산업이 날개를 펴게 해준다는 말이다.

이런 기발한 말로 규제 완화를 강조했지만 그 누구도 시원스런 성과를 냈다는 평가는 듣지 못 했다. 그런 터에 윤 당선인이 또 하나의 새뜻한 비유를 제시했다. ‘신발 속 돌멩이 같은 규제들을 제거하겠다’고 한 것이다. 규제 하의 기업활동은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격이라고도 했다.

비유들은 좋았지만 규제 완화가 말처럼 잘 되지 않았음은 역대 정부에서 보았다. 규제 개혁이 왜 그리 힘든가. 두말할 것도 없이 법령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모든 규제는 법령에 그 근거가 다 있다. 국민 입장에서 볼 때 규제 조항은 거의 무궁무진하다. 그 법령들 중에는 제정할 때에는 합리적이다가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다. 여건 변화에 따라 제때제때 손보지 못한 것들이 강어귀의 퇴적물처럼 쌓인 거다. 여기에다 해마다 숫자를 늘려온 공무원들이 ‘업무영역 발굴’에 나서다 보면 법령 속에 웅크려 있던 규제는 되살아나게 된다. 법령대로 하는 일을 누가 뭐랄 것인가.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것과 규제 사이엔 상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관공서 조직원들의 업무 분장표를 보면, 극단적인 예라 할지 모르지만, 1년에 한두 번씩 여는 무슨무슨 ‘위원회 회의 준비 및 진행’같이 단순 일회성 ‘업무’ 한 두개가 달랑 명시돼 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한가한 직원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실정이라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영부인 의상담당’ 직원 채용도 있음직하다. 아니 나중에 ‘의(衣) 담당’과 ‘상(裳) 담당’이 분리돼 업무를 나눈다 해도 놀랍지 않을 일이다. 공무원은 자꾸 늘어나는데 확대할 업무 영역이 마땅찮다면 어떻게 될까. 한가한 일손들은 법령 속에 숨어 있는 규제 조항들을 살피게 되지 않겠나.

규제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규제개혁부를 신설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대통령의 친 기업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강한 의지와 좋은 비유들도 번번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늘 용두사미였다. 그 많은 법령 속 규제 조항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굳이 안 살려도 좋을 규제 조항에 천착하는 공무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규제 완화는 구두선일 뿐이다. 규제 법령을 하루 이틀에 다 정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난 5년 간 13만 명을 늘렸다는 공무원 증원이라도 억제하는 ‘작은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효율적인 규제개혁 해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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