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 수령의 초조반 약선죽
[경일춘추]진주 수령의 초조반 약선죽
  • 경남일보
  • 승인 2022.04.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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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이학박사)

 

 진주 월아산 깊은 질마재에서 피기 시작한 해가 남강을 병풍처럼 두른 뒤벼리, 동쪽 새벼리 절벽까지 온통 첫 빛으로 물들인다.

진주성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수령의 처소인 내아에서 요령(놋쇠로 만든 종)소리가 들린다. 나리가 일어났다는 신호다. 조반을 올리기 전 ‘초조반’이라 하는 죽상부터 차린다.

공사(公私)로 골몰한 수령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지체가 낮은 사람들의 의무였다. 보양식인 소고기죽, 열이 나고 눈이 충혈 되는 증상을 치료하는 데는 치자죽을 쑤어 먹게 했다. 연꽃 열매를 가루 내어 찹쌀가루와 산약, 백복령을 섞은 연자죽도 있었다. 위장을 열어주고 담을 없애 가슴을 청량하게 하는 것은 약선죽이다.

죽실가루에 밤가루, 감가루를 넣은 죽실죽도 별미였다. 지리산 오미자와 인삼, 맥문동 등을 달인 8미차(八味茶)와 같이 올린다. 죽실은 봉황이 입에 물고 벽오동(碧梧桐, Chinese parasol tree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아욱목 벽오동과의 낙엽교목)속으로 넘나든다는 대나무 열매다. 찰기가 있어 국수를 만들기도 했다. 죽실이 많이 열릴 때는 수만 섬이나 되었다. 지리산에 죽실이 열리면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 장면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수령이 백성들의 생사를 좌우했으니 관속들은 밥상에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 사실 지방관들의 음식 낭비는 제재(制裁)대상이었다. 수령의 일상식은 아침과 저녁 두 끼였고 밥, 국, 김치, 장을 제외하고 네 가지 반찬이면 족하다 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수령들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밥상에 백홍반(흰밥, 팥물 밥) 두 가지를 따로 차려 수륙진미를 갖추어 놓고는 밥상이 이 정도는 되어야 체모가 선다고 여겼다.

수령은 세금 수탈로 임기를 시작했다. 부임 전,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러 가면 대전 별감에게 통과료를 내야만 대궐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궐내행하·闕內行下). 행장을 꾸려 부임지로 가는데 드는 돈도 수백 냥이다. 수령은 제반 비용을 부임지의 아전에게 미리 통지하여 백성의 세금으로 마련했다.

화려했던 연회상인 진주 교방꽃상, 12첩 궁중상 위에는 백성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착취에 시달리던 조선의 백성들이 처음으로 궐기했던 ‘진주민란’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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