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재래시장에서 만난 애콩
[경일춘추]재래시장에서 만난 애콩
  • 경남일보
  • 승인 2022.05.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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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봄이 오나 했더니 벌써 여름이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습관처럼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그래도 중단 없는 계절변화가 고통스런 코로나 엔데믹에 위로가 된다. 한동안 닫혔던 재래시장에 사람이 붐빈다. 어깨를 부딪고 말을 섞으며 사는 것이 삶이다. 흥정을 하고 가격을 묻는 소리에 활기가 넘친다. 철지난 모종을 사서 들고는 시장터 좌판에서 잔치국수 국물을 홀짝거리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재래시장이 주는 재미는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하다. 파는 사람이 심드렁하면 사는 사람이 악착같고 호객 심한 장사치에게는 오히려 발길을 돌린다. 몫 좋은 곳보다 허접한 나무계단 아래 옹송그리고 앉아 텃밭에서 가지고 나온 듯한 물건을 다듬으며 지나치는 장꾼들 눈치만 보고 있는 어수룩 장사치에 관심이 더 간다. 굳이 흥정을 하고 가격을 깎자고 덤비지 않아도 의례 알아서 덤을 더 줄 것 같은 푸근함과 순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인가. 상품의 정갈함이나 가격의 투명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굳이 점잖을 떨면서 거래를 하지 않고도 어쩐지 담박한 물건을 얻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 재래시장이다.

천막이 쳐지고 좌판이 벌려있는 장마당을 몇 바퀴 돌면서 장 구경을 하다가 할머니들이 연이어 앉아 산나물이며 된장이나 간장, 들깨와 참깨 등을 조그만 봉지에 넣어 팔고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텃밭이나 산야에서 아침에 막 수확하여 가지고 온 채소는 비록 상품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슬조차 깨지 않아 풋풋함과 신선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오가는 손님도 별로 없는 장터 구석에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정갈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쪽을 진 할머니가 연녹색 콩을 붉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팔고 있다. 봄 냄새 물씬 나는 애콩이다.

옛집 텃밭에는 해마다 애콩이라 부르던 완두콩을 심었다. 내한성 식물이라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이른 봄에 심어도 잘 버텨낸다. 늦가을에 심어 두면 겨울을 보내자마자 싹이 올라온다. 언 땅이 풀림과 동시 심어도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햇살의 툭툭함 못지않게 성하게 자란다. 모르긴 해도 어떤 작물보다 제일먼저 먹거리가 되어 식탁에 오르는 씨앗 식물이 완두콩일 것이다. 2년여 동안의 격리와 단절이 끝나고 사람냄새 훈훈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완두콩이 자그마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청신한 풋내를 풍긴다. 콩을 팔고 있는 할머니의 연초록 고운 저고리에 아침 햇살이 부서진다. 텃밭 돌담 아래 꽂아둔 마른 싸릿대 타고 하늘을 향하는 넝쿨 사이로 잉잉대며 날던 벌도 나비도 콩 파는 할머니 저고리에 같이 묻어온듯하다. 오랜만에 장이 제대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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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병 2022-05-11 17:25:29
완두콩을 애콩이라고도 하는군요... 깔끔, 신선, 대량, 할인가의 대형마트 보다 사람사는
냄새와 훈훈함, 진짜 할인 받은 느낌에 있어서는 재래시장과 비할 바가 못되지요.
코로나 끝의 생기 도는 재래시장 풍경의 글 잘 읽고 감상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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