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존재와 관계
[경일칼럼]존재와 관계
  • 경남일보
  • 승인 2022.05.18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김태욱


모든 생명체의 존재에는 반드시 부모가 필요하다. 부모를 포함한 가족과 친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유일한 관계 설정이다. 그 외의 모든 관계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친구를 사귀고 배우자를 만나며 직장이나 사회에서 동료를 만들어가는 것 등은 모두 나의 선택에 의한 관계이다. 이 관계 속에서만 나의 존재가 평가받고 또한 빛을 보게 된다. 무인도 나 홀로 생활에서는 나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관계만이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평생에 걸쳐 중요하다. 그 관계를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좋은 관계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에서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는 천군만마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관계는 매우 어렵다. 성현의 말씀처럼, 어느 누구도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그만큼 수의 서로 다른 우주가 있는 법이다. 충돌하는 우주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 관계 설정이다. 좋은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방법을 필자는 ‘올바름’이라는 용어로 대신하겠다. ‘올바르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역사상 성현들의 숱한 말씀에 기초한다. 만남에 성실하고 약속을 지키며 타인의 재산을 탐하지 않고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할 권리가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우 받고 싶은대로 대우하고 자신의 처지를 나의 것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때에 이러한 올바름을 추구하고 정성을 다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이 가족과 친지라는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결정된 가족과 친지와의 관계는 오히려 더 많은 갈등을 촉발한다. 상대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으나 그 상대가 ‘편안함과 만만함’의 경계를 넘어설 때의 갈등은 대표적이다.

너무 오래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라서 그런지, 너무도 편하기 때문에 그런지, 차라리 타인이었다면 더 조심하였을 것을,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온갖 몹쓸 말과 행동을 쏟아낸다. 서로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미운 감정에 주체할 수 없으나 반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생겨난다. 때로는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혀야 한다. 내가 힘들 때에 그 누구보다도 나를 걱정해 주고 나의 편이 되어야 할 사람으로서 내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그 감정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이 관계는 죽음에 이르러야 비로소 종료된다.

가족과 친지간의 불화는 묵은 화두이다. 분명한 것은 가족도 독립된 인격체이며,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는 매우 역설적이지만 구성원끼리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 채 남처럼 대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족과 친지에게 베풀 때에는 남보다 더 살갑게, 더 따뜻하게 해 주어도 무방하며 그것이 참으로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라고 ‘내 마음은 이러한데 왜 몰라주나’를 요구할 경우에는 가족을 남처럼 대하는 것이 더 낫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의 서운함과 외로움은 자칫 배신감으로 연결된다. 이 때의 원망은 ‘가족이라는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인해 타인과 비교해서 훨씬, 아니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5월 가정의 달은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이 선물한 생명의 계절이다. 나의 존재는 오직 관계에서만 소생할 수 있다. 자연과 닮은 채로 우리는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오직 관계만이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