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설익은 정책과 기득권,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경일시론]설익은 정책과 기득권,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 경남일보
  • 승인 2022.05.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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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교수


경제학계에서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저명한 경제학자 한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케인즈(John Keynes)일 것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완전고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유에 맡기는 것보다는 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서 소비와 투자의 유효수요를 끌어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케인즈의 이 이론을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를 모순의 위기에서 구한 ‘수정 자본주의 혁명’이라고 극찬한다. 그러나 1974년 노벨상을 받은 하이에크(Friedrich Hayek)를 비롯한 자유주의 학파에서는 케인즈 이론이 진통제처럼 통증을 줄여주는 단기효과는 있어도 근본적 치유책은 아니며, 결국에는 병을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한다.

호황과 불황의 경기변동은 어찌 보면 경제주체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바로 잡아가는 시장의 자연스런 순환과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재정 또는 규제를 늘려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조정 및 치유 기능을 위축시키고 경기변동의 진폭을 확대하며 경제를 정부 통제에 예속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따라서 자유주의 학파에서 케인즈 이론을 케인즈 스스로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던 ‘경제학자의 위험한 아이디어’로 평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지금 케인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가 남긴 말 때문이다. 케인즈는 선의든 악의든 세상에 위험한 것은 경제학자와 정치 사상가의 설익은 아이디어라고 단언했다. 기득권 또한 세상에 위험 하지만 이들의 아이디어에 비하면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케인즈의 이 말은 지난 정부 5년간의 경제정책들을 돌이켜 보면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위험에 빠뜨린 첫째 요인은 경제학자의 설익은 아이디어가 정치 이념과 결합한 소득주도성장론이고, 둘째 요인은 시장을 정치화하여 변화와 혁신에 강하게 반대한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을 올리고 공공 일자리를 늘려서 가계소득을 높이면 유효수요가 늘어나 경제성장의 선순환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희망적 가설이다. 성장의 결과를 성장의 원인으로 뒤바꾼 소득주도성장론은 일종의 주객전도 가설이다. 이런 실험 가설을 국토는 비좁아도 인구가 5000만명이 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 적용한 지난 정권의 대담한 시도를 보면서 경제학자의 설익은 아이디어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한 케인즈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기득권은 경제학자 아이디어보다 덜 위험하다고 케인즈는 말했지만 우리나라 상황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어베앤비와 우버 같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진입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인위적 장벽이 낮고, 개인의 직업 선택과 기업 경영의 자유가 허용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되는 미국과 같이 포용적 제도를 확립한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의 위험한 장애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스마트폰 앱 기반의 건강관리 사업은 의사들이, 공유차량 비즈니스는 택시업계가, 생산라인 변경 조차 노동자들이 거칠게 반대하는 등 기득권층이 도처에서 변화와 혁신에 저항하고 있다.

경제성장은 창조적 파괴가 연속되는 과정이다. 창조적 파괴는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면 현재의 기득권층이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기득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변화와 혁신에 흔히 반대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시위로 정치화하는 등 유별나다. 그래서 한국 경제에서는 경제학자의 설익은 아이디어도 위험 하지만 기득권이 더 위험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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