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학력 저하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경일시론]학력 저하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 경남일보
  • 승인 2022.06.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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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 교수


선거가 끝났다. 집에 고등학생이 하나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둔 건 교육감 선거다. 부모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교육감의 정책에 따라 일선 학교의 정책들이 요동칠 수도 있으니 더욱 그랬다. 4년 만에 전국적으로 교육감들의 성향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지난 선거에서는 대전, 경북, 대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소위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보수 성향의 교육감보다 한 명 더 당선되는 데 그쳤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소위 보수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이 자주 내세웠던 이슈가 전교조에 대한 비난과 학력 저하 문제였다. 궁금했던 건 하나다. 학력 저하. 학생들이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능력, 또는 이를 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학력이 저하되었다면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교육과정이 계속 개정되고, 교육의 지향점이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대학에서도 입학생들의 기초학력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단 필자의 전공인 ‘문학’ 그것도 ‘한국고전문학’ 분야를 살펴보면, 기초 학력 저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교과서 집필이나 검수를 어깨너머로 살펴보면, 지금의 대학 신입생들 중고등학교에서 배워온 문학 작품의 수는 필자가 ‘문학’이라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품의 수에 비해 1/2 혹은 1/3의 분량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독해가 까다롭다는 우리 고전 작품들의 수는 더 많이 줄었다. 배우는 양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배우는 양이 줄어든 것과 학력 저하는 무슨 관계일까? 교육의 시수와 교과서 두께 분량이 줄어든 것과 학력의 저하는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본다. 교과서에서 예전보다 적은 수의 문학 작품들을 다루는 것은, 작품을 읽어내는 것을 학생의 자율과 선택에 맡기고 수업시간에는 문학 작품들을 올바로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설계된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대학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대학에 있는 선생들은 자신들이 배워왔던 그 시절의 교육만 기억하고, 그 기초 위에서 교육과정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중고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배우고 들어왔는지 현황과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부나 각 지역 교육청이 이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학력 저하가 문제라고 꼽는 교육감이나 교육감 후보들, 하다못해 수능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겪었던 교육과정만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젠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보다, 그걸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게 필요한 시점인데, 배우는 양과 질 그리고 무엇보다 배움이라는 개념과 범주가 구시대와 달라진 현실을 두고 학력 저하로 몰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등장한 지 근 4~5년이 지났다. 코딩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 자동으로 코딩을 짜주는 앱이나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있다. 결국 중고등학교 교육이나 대학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코딩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보다, 그 코딩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사고력이나 창의력이다. 예전에는 시험에 지문으로 나올 만한 문학 작품들을 최대한 많이 읽고 밑줄 긋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현재 웹소설로 대표되는 대중문학의 파이가 기존의 순수문학 시장보다 훨씬 커진 지 오래된 세상에, 고전문학 몇 편을 더 읽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학력을 결정하는 시대는 아니게 되었다.

교육학에서 회자되는 오래된 말이 있다.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에 태어난 선생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지금 우리의 교육이라고. 현재 학력저하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교육의 방향성을 달리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시대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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