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마음의 만리장성
[경일포럼] 마음의 만리장성
  • 경남일보
  • 승인 2022.06.0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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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송희복 교수


지금으로부터 5년 전만 해도, 이른바 촛불 정부라던 새 정권은 20년 집권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최고 권력이 네 차례나 연속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낸다는 것은, 진(秦) 제국이 통일 위업을 달성하고도 수성을 하지 못한 만큼 어려운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진시황이 영원의 제국이기를 바라 마지않았던 진 제국은 아들 대에 이르러 끝장나고 말았다. 자신만만하던 지난 정권 역시 4회 연속극은커녕 단막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진시황은 선지자들로부터 알쏭달쏭한 예언을 듣는다. 망진자는 호야라. 즉 진을 망칠 까닭이 호(胡)에 있다고. 이 오랑캐 호 자는 누가 봐도 북방의 유목민 오랑캐였다. 그래서 그는 이 오랑캐에게 공격의 맛을 좀 보여주면서 기다랗고 높은 담을 쌓았던 거다. 이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하지만 그 한 글자의 비밀이 역사를 통해 밝혀졌다. 호는 오랑캐가 아니라,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胡亥)였다. 그의 장자 상속의 유지를 왜곡하면서 12세 어린 아들 호해를 후계자 2세 황제로 조작한 천고의 간신배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 때문에, 진 제국이 자멸했다. 내 편에게 기분 좋게 권력을 승계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부지런히 만리장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것 바깥의 오랑캐는 국정농단 관련자들이요, 적폐세력이요, 국민 중의 절반에 거의 해당하는 토착왜구들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시황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적어도 네 가지 공통점이 엿보인다. 첫째, 전국(戰國) 시대를 종식해 통일을 이루었다. 이설이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게 전국 시대는 각각 182년, 123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둘째, 두 사람의 정신 구조가 광기에 가까운 망상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 불로초가 세상에 어디 있으며, 쪼그만 섬나라가 대륙을 어찌 넘볼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이 인도까지 쳐들어간다면서? 셋째, 단명의 통일제국과 단명의 막부권력이 아들 대에 끝이 났다는 것. 그리곤 멸문의 화까지 당했다. 망해도 온전히 망했던 거다. 넷째, 죽 쑤어 개 준 격이 되고 말았다. 진시황 이래, 농민 지도자인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 제국을 건설했다. 이 제국은 전한·후한·촉한으로 이어가면서 431년이나 존속했다. 지금의 도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창업된 에도막부 역시 멀리 교토에 허수아비 천황을 둔 채 265년간 일본을 지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8도 중에서 아래의 4도를 그냥 먹으려고 했지만 그마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말로에 이르렀다. 그때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미군의 베트남전 패퇴와 비슷하게 패퇴했다. 그는 대륙 세력이 밀려들 때 조선 하(下)4도가 일본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길 바랐다. 또 다른 만리장성인 것.

이러저러한 역사의 교훈을 통해, 새 정부도 젠더 갈라치기 내지 성차별주의라는 마음의 만리장성을 쌓아선 안 된다. 또 우리 사회는 부모덕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자녀가 있어서도 안 된다.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이 마음의 만리장성이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지옥훈련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손흥민이 꿈꾸었던 그 사회는, 지금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회, 조국도 추미애도 정호영도 없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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