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고추나물
[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고추나물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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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전문기자)
[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고추나물

눈물이 난다 매운 사랑

제가 고추를 참 좋아하는데요. 그것도 청양고추를 좋아하죠. 맵다고 하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맛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운 떡볶이를 자꾸 반복해서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이죠. 한여름에 소위 ‘땡추’라고 부르는 청양고추를 먹으면 가뜩이나 더운데 땀까지 뻘뻘 흘리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하지만 연신 땀을 닦으면서 매운 기운에 ‘후후’ 하면서도 먹는 데 그 시원함이랄까요.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고, 기분도 상쾌해지죠. 매운 걸 먹으니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속 열이 가라앉으니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건데도 말이죠.

아무리 불편해도 땡추가 없으면, 고기 한점 먹기도 제 맛이 안납니다. 그래서 냉면 집에 가서도 된장과 땡추를 달라고 하는데요. 어떤 집 사장님은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합니다. 무슨 냉면집에서 땡추를 찾냐고요. 그러나 경남에서는 냉면집, 국수집에서도 땡추와 된장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요. 땡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겠죠. 손님들 마다 “땡추를 달라”고 하니 식당에서도 미리 고정반찬으로 준비해 두는 거죠.

제가 히말라야 산행하던 때였는데요. 마땅히 가져갈 반찬이 무얼까 생각하다 떠올린 게 땡추였어요. 잘 씻어 꼭지를 따고 비닐 팩에 담아갔죠. 두 근을 넘게 가져갔는데요. 얼마나 요긴하게 먹었는지 빼먹고 갔더라면 서운할 뻔 했습니다. 물론 여느 한국사람들의 해외여행 보따리에 필수품으로 들어가는 고추장과 쇠고기를 섞어 볶은 고추장도 가져갔지요. 산행하면서 힘들 때마다 롯지의 뜰에 앉아 땡추를 반찬 삼아 먹고 나니 피곤도 풀리는 것 같고 좋았지요. 함께 떠난 동료들은 보통 김이나 깻잎, 장조림 정도를 요긴한 반찬으로 준비해 가는데요. 요 땡추를 보더니 함께 갔던 동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두 개씩 집어가 제가 먹을 것은 모자랄 지경까지 됐습니다.

다음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설 때는 더 많이 가져와야겠다 싶었죠. 땡추의 효과를 보고나니 외국 여행을 할 땐 꼭 가져가는 필수품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싱거운 풋고추 즉, 맵지 않은 고추는 또 손이 가질 않습니다. 어쩐지 별맛이 없거든요. 매운 걸 좋아하는 식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맹맹한 고추는 고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어찌됐던 한국사람에게 고추사랑이란 너나없이 맵싸한 그 맛에 반하는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고춧잎도 나물로 볶아 먹으면 참 맛나거든요. 그렇게 고추를 좋아하는데요. 야생에서 피는 고추나물이 있어요. 알고 보면 밭에서 키우는 고추와는 다른 야생화죠.



 
고추나물은 물레나물과의 풀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해 있다. 20에서 60㎝ 정도까지 자라고 7~8월에 노란 꽃이 핀다. 열매는 익으면 붉은 색의 작은 고추처럼 생겼다. 열매는 9~10월에 맺는다. 과피가 말라서 쪼개져 씨를 퍼트리는 방식의 삭과다. 어린 잎을 식용으로 쓰고 전체 식물은 약용으로 사용된다.





고추나물(Hypericum erectum Thunberg)은 물레나물과(Guttiferae) 고추나물속(Hypericum Linne)인데요. 여기엔 물레나물, 큰물레나물, 큰고추나물, 고추나물, 다북고추나물, 애기고추나물, 채고추나물, 좀고추나물, 들고추나물이라고 불리는 진고추나물 등이 있어요. 고추나물은 우리나라 각처 산지의 약간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데요. 노란 꽃잎이 다섯장으로 피는 꽃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꽃인데요. 암술과 수술도 노란색으로 길게 자라나와 화려한 모양새입니다. 어린순은 식용으로도 쓰입니다. 성숙한 것은 약으로 써요. 고추나물에는 색소 물질인 히페리신(Hypericin) 성분이 들어있는 검은 반점이 흩어져 있는데요.

히페리신은 붉은색의 형광 물질로 물레나물에서는 투명한 색으로, 고추나물에서는 검은 반점의 형태로 잎과 꽃에 산재하고 있어요. 살균작용이 있어 각종 염증에 효과적이며, 심장 수축을 세게 하고 혈관을 수축시키는 수렴작용이 있어요. 또 광독성 작용이 있어 햇볕에 노출되면 생체 내에서 활성화되어 독성을 나타내지요.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히페리신 등이 들어있는 서양고추나물을 성요한초라고 하여 우울증 치료제와 불면증 및 스트레스 해소 등을 위한 허브차로 이용했어요. 기름으로 추출한 것은 항염증 및 항균제로 이용했지요. 친환경 농업에서 고추나물의 살균 효과 및 구충 효과를 활용해 천연 농약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전초 추출액은 신경계통 질병, 청각장애, 류머티즘, 근염, 관절염, 허리통, 두통, 발열, 신석증, 신장염. 주독, 악창, 구창, 화독, 건위, 해열, 소염제, 편도선염, 소아발육촉진에 먹거나 피부병에 바르면 효과가 있어요. 생잎에서 짠 즙은 새들이 병에 걸렸을 때 먹죠.

한 마을에 매사냥꾼인 형과 마음씨 착한 동생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사냥꾼인 형이 사냥을 나갔는데요. 자기의 매가 상처를 입자 그는 산에 있는 약초를 캐서 매의 상처를 치료하였는데, 신통하게도 매의 상처가 깨끗하게 나았던 것이었어요. 이 일을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무슨 풀로 매의 상처를 치료했어?’라고 물었으나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얼마 후 마음씨 착한 동생은 사람들에게 그 풀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죠. 이러한 동생의 행동에 화가 난 형은 동생을 죽이고 말았어요. 동네 사람들은 착한 동생을 묻어 주었는데 그 후 동생의 무덤에서는 ‘고추나물’이 돋아났다고 하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는데요. 그래서 고추나물의 꽃말이 ‘친절’이 되었지요.

고추나물은 독일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항우울제로 이 약초로 만든 상품 중 하나가 ‘프로잭’이라고 하는데요. 1996년 ‘영국의학저널’에 고추나물에 대해 실시한 23건의 임상 시험 결과를 요약정리한 논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보고된 실험 가운데 15건은 ‘히페리쿰’이라는 학명으로도 알려진 고추나물과 위약(僞藥)의 대조실험이었고, 8건은 프로잭 이전의 항우울제들과 고추나물의 효능에 대한 비교실험이었지요. 실험 결과 고추나물은 가벼운 우울증을 치유하는 데 위약보다 월등한 효능을 나타냈고, 비교 평가대상이 된 다른 약품들보다 부작용이 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논문을 쓴 연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내과 의사 신시아 멀로는 가벼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약제로 고추나물을 권했지요.

제 시에 ‘매워서’라는 시가 있어요. 매운 고추가 그리움과 흡사하다는 이야긴데요. 매우면 눈물이 나잖아요. 그리워도 눈물이 나죠.

그리움이 / 고추처럼 햇살에 / 내 말려 / 보기만 해도 / 눈물이 난다 / 매운 사랑

※ 프로잭 : 독일에서 고추나물을 이용해 개발한 1988년 미국에서 시판된 이후로 우울증에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여줌으로써 높은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항우울제라고 해요. 이렇게 풀 나무의 성분을 추출해 약으로 만드는 일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오래전부터 알려진 풀 나무의 효능을 잘 활용하면 신약으로도 개발할 수 있어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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