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이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게 맞다
[경일시론] 이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게 맞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7.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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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 교수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명 구분해야 한다. 다른 것은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틀린 것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서로 다른 생각들의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이 사회의 갈등 해소 과정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은 맞거나 옳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은 틀리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시작부터 한계에 부딪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소위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지.”라는 무심한 말은 별반 대책 없게 들리지만,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일단은 인정하고 논의를 펼쳐보자는 의미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말보다는 틀렸다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세상 모든 갈등에다 대고 필자의 생각을 강요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의 개인적 신념은 분명히 밝혀야겠다. 그것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저 먼 미국 땅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다.

미국 기준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49년 만에 뒤바꾼 셈이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이 판결을 통해 개별 주에서 임신 중단을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로 대 웨이드’는 1973년에 이루어진 미국 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이다.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가 미국 헌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결정의 찬반 비율은 7:2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임신 중단을 반대하는 쪽이 7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미국 대법원의 판결처럼 미국 사회 구성원의 70%가 임신 중단의 합법화에 반대하고 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행정부의 석탄 및 가스·화력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놨다. 이 판결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우리 눈앞에 와 있는 기후 위기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가, 더 이상 지구 환경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거나 마찬가지다. 환경 규제 철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경제적 편리를 증가시킬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 이 판결은 완전히 틀렸다.

물론 각각의 판결들에 대해 세부적인 반론이 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연방으로 구성된 미국의 경우, 개별 주들이 독자적으로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입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보수적’이라는 주에 사는 여성들은 임신 중단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탄소 배출 제한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 권한에 대한 제동의 판결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파급력이 큰 환경에 대한 규제는 행정부의 몫이 아니라 의회의 몫이라는 선언이다. 교묘하게 환경 규제에 힘을 빼면서 그 책임을 의회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서로 입장이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 정도가 아닌, 그래서는 안 되는 것, 틀린 것도 분명 있다. 정치에 대한 사법의 우위 혹은 개입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는 이를 반영하여 갈등을 조정한다. 법치주의가 민주사회의 근본이라 할지라도 법리적 판단을 넘어서는 판결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판결 내용에 대한 비판이다.

여성 인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임신 중단에 대한 판결은 보수적인 법관들의 견해일 뿐일지 모른다. 당장의 편리를 위해 우리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판결은 어떠한 비난도 부족하지 않다. 저들의 판단은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다. 아예 틀렸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가 바다 건너 이 땅에까지 넘어올까 겁이 난다. 검사들의 정권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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