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8)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8)
  • 경남일보
  • 승인 2022.07.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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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50년만의 축의금과 김정자 교수 그리고 신작시집(4)
김정자 교수의 월간문학 목동살롱 두 번째 글은 ‘50년만의 축의금 봉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낸 원고였다. 문예지 편집인으로서 자신과 유관한 원고를 받는다는 것, 불편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문단의 한 쪽 일화를 신뢰할 수 있는 시인의 글로 받은 것이 나름 기뻐지는 일이었다.

김정자 시인은 최근 제8시집 ‘맨발로 숲길을 걸어’(육일문화사)를 선보였다. 김 시인은 머리말에서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날마다 칭얼대듯 살아온 것 같다./ 무엇으로 한 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마음 속 고통들과 다투느라/ 늘 밤잠을 설치는 나날이었다.…시는 나날이 푸념 섞인 노래들로 쓰여/ 그것 또한 스스로를 질책하는 작업이 되었다./그래도 한 생을 풀어 세상에 내어 놓고 싶은/소망들이 나를 흔들었다./ 그것이, 이 작은 시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유가 된 것 같다.//봄이 무르익고 있다.”

소박한 말이지만 진실한 뜻이 담겨 있어 시를 빨리 접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첫 번째 실린 시는 ‘은행나무 마른 눈물을 닦아 줍니다’ 이다.

“벨체아 사중주단은/ 베토벤 현악 사중주 10번을/ 악기를 부숴버리듯/ 연주합니다/ 눈물 흘리던 산골의 은행나무/ 급작히 가지를 뻗어/ 무성히 잎들을 피웁니다/ 손 내밀어 그들을 어루만지는/ 바람과 햇빛이 성큼/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섭니다. (후략)”

사중주단이 베토벤 현악 사중주 10번을 악기를 부숴버리듯 연주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백남준이 공연중에 악기를 부숴버리는 행위에 도달하는 것이 떠오르는데 정열적인 연주와 은행나무 가지와 무성해지는 잎이 연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바람과 햇빛이 다정한 목소리가 된다는 것 등의 연계적 이미지가 울림을 준다.

시인이 인간적으로 신뢰를 주는 경우 시 작품은 독자에게 즐겁게 다가온다. 필자에게는 김 시인의 시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는 시를 쉽게 쓰는 듯한데/ 참 아름답다/ 짤막한데/ 엄청 긴 듯한 글이다/ 일상에서, 숲에서, 들에서/ 무심히 불러온 듯한 자료들을/ 시의 나뭇가지에 걸어두면/ 새소리, 바람소리./ 색색의 꽃대궁으로 변한다/ 유년의 꿈을 새기면/ 마른 가슴은 촉촉이 젖는/ 뻐꾸기 소리, 뱁새소리, 개똥지빠귀들의/ 합창으로 그득해진다/ 나는 그의 시 속에서/ 언제나 눈물나고/ 황홀해진다” 이 시의 제목은 ‘쉽게 쓰여진 시’다. 윤동주의 시에 같은 제목이 있는데 감동적인 시다. 도쿄 릿교대학 재학중(6개월) 쓴 시다. “인생은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가 얼마나 쉽고 간명한 것인가. 김 시인의 시도 쉽고 간명하다.

윤동주가 도쿄에서 쓴 유일한 시가 인상적인데 다음 학기에는 도시샤대학으로 옮긴다. 김정자 시인의 시 구절에 숲에서, 들에서, 새 소리, 바람 소리, 뻐꾸기 소리, 뱁새 소리, 개똥지빠귀 소리들 만으로도 가슴 촉촉이 젖어든다.

김정자 교수의 ‘고향에 가면’이 눈길을 끈다. 그의 고향은 통영이다. 통영 출생으로 부산 경남여고를 나왔다.

“고향에 가면/ 내가 태어났던 토성고개 너머/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낯선 건물이 버티고 있다/ 집을 지나면서 나는/ 그쪽으로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따금 큰 소리로 다투던/ 내 할머니도, 아버지도,/ 집 떠난 엄마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세병관은 있지만/ 내가 태어난 집은 없는/ 고향이 나는 / 어쩐지 서먹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고향이 그립다/ 가슴 짠하게 /눈물 나는 그리움이/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그냥 그립기만 하다. ”

고향은 옛집도 없어지고 조부모, 친부모 모두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서 서먹한 곳이지만 생애의 원형으로 자신의 뼈와 살을 이루고 있는, 그냥 묻어드는 눈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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