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신화가 아닌 인간 김지하와의 만남
[경일포럼]신화가 아닌 인간 김지하와의 만남
  • 경남일보
  • 승인 2022.07.2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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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지난 5월 8일, 시인 김지하가 죽었다. 49일째 되는 날, 그의 말 없는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보아야 한다며 문화제를 했다. 김사인 시인은 “심술‚œ고 미운 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그의 소신공양으로 우리는 한 시대를 건넜습니다”라고 추모시를 읊었다. 도올 김용옥은 추도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T.S 엘리엇보다 더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며 “‘내가 누군데’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누군데’를 말하는 그의 푸념이 말년의 생애를 덮었다. 지하는 너무 고독했다”고 전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미디어와 출판사들은 뭔가 얻어가려고 끊임없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말과 현실은 어긋나고는 했다”고 전했다.

내가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게 50년 전이니 꽤 오래되었다. 가리방으로 밀어서 프린트한 그의 시「오적」을 보면서 1970년대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유신시절에 나는 자유와 평화를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꿈도 허술했고, 내공도 볼품이 없었다. 가끔씩 힘이 들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자신을 부추기고, 간절한 마음을 굳건히 하려고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노래 「타는 목마름」과 「아침이슬」을 자주 불렀다. 언젠가는 나도 끌려 갈거라는 불안을 떨치고, 앞서서 끌려간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노래의 마지막 가사인 ‘민주주의여 만세’ 부분에서는 실제로 두 손을 번쩍 치켜들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놀다가 하숙집으로 돌아올 때는 내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고, 발걸음은 훨씬 분명해졌다. 말하자면 에너지가 다시 충전된 것이다. 하숙집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를 지날 때는 태양이 묘지 위에서 붉게 타오르는 상상을 하면서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내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친구들과 같이 하곤 했다. 만약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아기자기, 오순도순한 소시민적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뒤돌아보면 감사드려야 할 분이 여러분이다. 큰 도움을 받았던 분들 중에 한 분이 「오적」과 「타는 목마름」을 쓴 김지하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가 언젠가부터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실망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반유신의 상징이었던 그가 생명과 우주를 이야기하는 사상가로 바뀐 것은 이미 최시형, 최제우에게서 받은 감동이 있어서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럭저럭 반세기가 지난 2018년과 2019년 5월 4일, 하동 토지문학관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매년 열리는 소설가 박경리 추모제 행사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내빈소개 순서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그를 보면서 꽃잎처럼 떨어진 민주열사들이 떠올랐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한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후보 선택은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민주화운동을 했으니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민청학련의 배후로 몰렸던 그가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에 검은 배후세력이 있다고 조선일보에 쓴 글이다. 그는 젊은 대학생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치고 있을 때 자신의 세계적인 글솜씨로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배후에는 검은 세력이 아니라 독재 권력이 있었다. 그가 동료의 죽음을 선동한다고 몰아부쳤던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때는 그와 친했던 화가 임옥상은 ‘김지하가 한 시대의 신화이자 우리들의 상처’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신화로서의 김지하가 아니라 인간 김지하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나도 그의 시집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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