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단언컨대, 평등은 약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여성칼럼]단언컨대, 평등은 약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7.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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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선생님, 월경휴가를 유급으로 받는 것은 불평등한 것 아닌가요?” 최근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만난 성평등교육에서 받은 질문이다. 그 학생은 월경통으로 인해 휴가를 주는 것에 동의하지만 일을 하지 않았는데 급여를 주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했다. 이 질문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학생들 10명 정도가 동시에 각자의 의견을 내며 반박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는 오랜 기간 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어두운 근현대사를 겪어왔기에 인권교육을 강조해왔다. 세계인권선언 2조 ”모든 사람은 어떤 구분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조항은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했던 내용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각자의 권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보장받지 못했을 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인권의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세계인권선언 30조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어떤 나라에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수 없다”라는 내용은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결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 수많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 배려, 협상하고, 화합해 나가야 한다.

최근 연세대 대학생 3명이 수업권 침해 등을 이유로 집회 중인 청소, 경비노동자를 고소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에 공감하기 보다는 시끄러워 나의 수업권을 침해받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다. 이번 달 내내 마음 졸이게 지켜봐야 했던 거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강조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탓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맞불 집회가 있었다. 언론은 ‘노노갈등’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를 설명하기 보다는 갈등을 부각했다. 이 모든 사건을 접하면서 씁쓸했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단지 이기주의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나의 위치와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도, 누구랑 싸우고 협상하고 제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단언컨대, 평등은 약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대우받는 강자는 차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관심조차 없다. 우리는 강자의 목소리를 훨씬 많이 들었고,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데 익숙하다. 강자들은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망각하게 하며, 진정 바꿔나가야 할 사회구조를 마주하게 하기 보다는 고만 고만한 위치에서 앞, 뒤로 서 있는 ‘을’들의 서열을 매기며 서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투게 한다. 진정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모르쇠다. ‘을’들이 힘을 합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젠더 차별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의 차이로 인해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련의 노력을 함께하기 보다는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고, 서로의 권리를 뺏고, 뺏는 너희의 문제라며 뒷짐 지고 있다.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월경휴가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은 여성들의 오랜 투쟁으로 변화된 결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세우기 위한 많은 노력의 하나이다. 그것이 여성의 특권인 것처럼 강조하며 오히려 남성의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을 언론이 주목하고, 정치인이 대변하면서 마치 사실처럼 느끼게 한다. 차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저울을 맞추고, 노동현장에서 차별받는 노동자가 소리 내어 저울을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일들은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다. 이 노력이 나의 권리를 뺏는 일인 것인지, 우리 모두의 권리를 높이는 일인지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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