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33]청량산 원효대사 구도의 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33]청량산 원효대사 구도의 길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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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길 끝에 내보이는 비경 한자락
청량사 전경.
청량사 5층 석탑.
◇원효대사 구도의 길

조선 중기 학자였던 주세붕 선생은 청량산을 ‘신선이 살만한 산’이라고 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청량산 풍혈대에 머물며 총명수를 마시면서 수도했고,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김생 선생은 김생굴에서 떨어지는 물로 붓글씨 공부를 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은 자신의 호를 ‘청량산인’으로 짓고 청량정사에서 학업을 닦았으며, 원효대사는 해골 물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3년 뒤 청량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청량사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도립공원 일부가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어 있다. 듣기만 해도 학문과 도교, 불교계의 큰 별들이 머물렀던 청량산에 옛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그분들이 남기고 간 향기를 만나기 위해 좋은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청량산을 찾았다.

진주에서 3시간 30분이나 걸려 청량산에 도착했다. 선학정 아래 있는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입석-원효대사 구도의 길-청량정사·솟대와 시인 쉼터-청량사-뒷실고개-하늘다리-장인봉-청량사-선학정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해 트레킹하기로 했다.

도로 가운데 우뚝 솟은 입석은 여름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인지 담쟁이 잎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입석에서 청량사까지 1.3㎞ 구간은 청량사 유리보전을 창건한 원효대사께서 수행한 길인데, 탐방객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게 하자는 뜻에서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가파른 산길이 아니고 비스듬히 치올라가는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인공적인 냄새보다 자연 그대로 조성된 산길이라 누구나 쉽게 탐방할 수 있는 길이다. 한평생 민초들의 아픔을 위무하려 했던 원효대사의 삶의 발자취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이름에 잘 어울리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설이 담긴 소나무.
뒷실고개에 걸린 이황 선생의 시.
◇퇴계 선생의 학문과 영화 ‘워낭소리’의 탄생지

청량사가 눈에 들어올 즈음, 청량정사와 ‘솟대와 시인’ 쉼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량산 자락 안동 예안에 살던 퇴계 선생은 수시로 청량산 청량정사(오산당)를 찾아 학문을 수양했다. 퇴계 선생의 시조 ‘청량산가’를 보면 선생이 청량산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다. 젊은 시절 청량산에서 청운의 꿈을 키운 퇴계 선생은 결국 조선의 대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재(漁舟子) 알까 하노라’

‘청량산 12봉우리의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 너뿐이니, 백구가 설마 이 풍경을 바깥에다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고, 못 믿을 건 저 복사꽃인데 꽃잎아 네가 계곡물 따라 흘러 내려가면 낙동강 어부가 청량산 비경을 보러 찾아올까 두렵구나.’ 하면서 청량산의 비경을 갈매기와 복사꽃에 소문내지 말 것을 당부하며 퇴계 선생 혼자 그 절경을 만끽하려 한 마음을 시로 표현한 걸 보면 청량산의 비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이 갈만하다.

청량정사 옆에는 ‘솟대와 시인’이란 현판이 붙은 쉼터가 있었다. 산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9가지 약초를 달인 구정차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는데 마침 주인장이 안 계셔서 차를 마실 기회를 놓쳐 무척 아쉬웠다.



 
솟대와 시인 쉼터 입구.


청량산은 단풍 든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녹음이 짙은 여름의 청량산도 정말 멋있었다. 빙 둘러싼 봉우리 속 한 송이 연꽃처럼 자리 잡은 청량사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청량사 경내에 들어서니 맨 먼저 5층 석탑과 큰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영화 ‘워낭소리’의 배경 무대였던 청량사, 노인이 죽은 소를 위해 석탑 앞에서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석탑과 유리보전의 지킴이처럼 서 있는 전설 품은 소나무인 삼각우송도 정말 명품이었다.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의상대사와 함께 힘을 쏟고 있던 어느 날,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는 논길에서 소를 몰고 논갈이하는 농부를 만났는데, 소를 보니 뿔이 셋이나 달려 있었다. 그런데 주인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날뛰기만 하는 소를 보고 원효대사가 그 소를 절에 시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하자, 농부는 흔쾌히 뿔 셋 달린 소를 시주하겠다고 했다. 원효대사가 소를 데리고 절에 오자 조금 전까지 그 사납던 소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었다. 이후 청량사를 신축하는 데 필요한 목재와 돌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 소는 청량사 준공 하루를 남겨두고 생을 마감했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의 전설을 되새기며 영화 ‘워낭소리’를 떠올리자 청량사가 여느 절보다 더욱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봉우리에 둘러싸인 청량사는 절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안온함을 안겨주는 것 같아 더욱 좋았다.



◇청량산 비경과 하늘다리

청량사를 둘러본 뒤 곧바로 절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하늘다리와 장인봉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뒷실고개로 올라가는 길은 정말 가팔랐다. 뒷실고개에 오르자 나무와 나무 사이에 퇴계 선생의 시 ‘꿈에 청량산에 오르다’를 목판에다 붓으로 써서 걸어놓았다. 낡은 목판과 빛바랜 글씨가 더욱 운치를 더해 주는 듯했다.

뒷실고개에서 300m 정도 걸어가자, 청량산 하늘다리가 나타났다. 해발 800m 지점에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하늘다리는 길이 90m, 폭 1.2m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선경(仙境)이었다. 오래 머물고 싶었던 하늘다리를 뒤로 하고 장인봉을 거쳐 신선이 된 기분으로 올라왔던 길을 되내려왔다. 청량산 비경을 마음속 깊이 선경으로 저장하기 위해 순간순간 눈에 담은 풍경을 클릭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뒷실고개 올라가는 길.
원효대사 구도의 길.
청량산 하늘다리.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주세붕 선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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