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포은과 진주 비봉루
[경일춘추]포은과 진주 비봉루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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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진주시 비봉산 남쪽 중앙에 자리한 진주 비봉루에는 한시(漢詩)가 주련(柱聯)으로 걸려있다. 飛鳳山前飛鳳樓(비봉산전비봉루)-비봉산 앞에는 비봉루가 있고, 樓中宿客夢悠悠(루중숙객몽유유)-누각에 잠든 나그네 한가롭게 꿈꾸네. 地靈人傑姜河鄭(지령인걸강하정)-지세 좋고 인물 걸출하니 강·하·정이로구나. 名與長江萬古流(명여장강만고류)-그 명성 긴 강물처럼 영원히 흘러가리라. 이 시는 1374년 충신 포은 정몽주가 38세 때 경상도 안렴사로 부임해 민심을 살피려 진주에 들러 비봉루에 하루 묵으면서 지었다. 안렴사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조정에 보고하는 직책으로, 조선시대 암행어사와 같다. 이 때문에 진주와 비봉산이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동시에 강하정의 세 성씨가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로 자리를 굳혔던 것 같다. 지금도 비봉루 기문에는 ‘예전에 포은 선생이 이곳에 올라 시를 지어 강·하·정 세 성씨를 크게 칭찬해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고 해 비봉루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고, 세 성씨 집안의 명성도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라고 돼 있다. 세 성씨의 직계 후손들은 물론, 진주인들도 포은이 비봉루에서 하룻밤 지낸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지령인걸강하정의 시구는 예전부터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로 널리 알려져 온 ‘강하정’을 통칭하는 것인데, 시를 지을 당시에도 실제 진주에는 문중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출현했었다.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인 비봉루는 진주의 진산 비봉산 아래에 있는 누각. 누각의 상단부분이 비스듬히 가공(架空)됐고 머리 부분은 용두장식을 갖춘 뛰어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비봉루는 고려조의 충신인 포은의 ‘장구지소(덕망이 있는 사람이 다녀간 곳)의 자리’로, 그의 후손인 정상진(鄭相珍)이 1939년에 지은 것이다. 이후 거의 50여 년 동안, 현 비봉루의 창건자인 정상진의 장남이며, 또한 추사체(秋史體)의 맥을 이어 온 진주 출신의 대서예가였던 정명수선생의 서실로 운영돼왔다. 현재는 그의 후손인 정인화씨가 관리하고 있다.

한말 진주 출신의 유명한 선비 하겸진(河謙鎭)은 ‘경치가 뛰어난 산과 강에 어진사람이 한 번 다녀가면 그 산은 높아지고 그 강은 더욱 깊어진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 옛날 포은의 유명한 장구지소였던 이곳 진주와 비봉산, 그리고 특히 본 비봉루는 앞으로 긴 세월 더욱 발양광대(發陽光大)할 진주의 유명 문화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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