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삼베와 거창 삼베 일 소리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삼베와 거창 삼베 일 소리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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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아들 이도룡은 천령산 처녀보고 쉰질넘는 담을 넘다 자주고름 자천령을 한주름을 째였구나. 범같은 우리 선생, 하날같은 우리 부모, 무슨 영이 내릴란지. 도화꽃이 하도좋아 꽃을 꺾다 쨌다 하소. 그리하야 아니되면 새벽날 밝은 날에 이내 방으로 찾아오면 무명지 당사실로 본살같이 새기주마. 새기기야 새길망정 본살같이 샛길소냐” 거창지방에 전해지는 삼베길쌈 일노래(노동요) 가사 중 일부이다. 1995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거창군은 예로부터 내려온 삼베의 고장으로 지금도 북상면 창선리와 갈계리, 가북면 용산리에서는 삼을 재배하여 삼베를 생산한다.

삼베가 생산되기까지는 삼 씨앗을 뿌려서 베를 짜기까지 여러 과정의 노동이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전 과정을 길쌈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삼베일이라고도 하는 삼베길쌈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하는 노동이 더 많다. 삼베 일 소리는 삼밭 매는 소리, 삼잎 치는 소리, 삼 곶 소리, 삼 삼는 소리, 물레 소리, 베 나르기 소리, 베 매는 소리, 베 짜는 소리 등 8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거창 삼베 일 소리는 이말주(李末珠)씨가 그 맥을 이어가다가 고인이 된 후에 이수연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삼(Cannabis sativa var. sativa)은 장미목 삼과 삼속에 속하는 식물로, 한자로는 마(麻)·마포(麻布)·포(布)라고도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예(濊)와 변(弁)·진(辰)에 마가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가락국에서 허왕후(許王后)의 나라인 아유타국에 포(布)를 보낸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삼은 서기전 3, 2세기경 일본의 조문만기(繩文晩期) 또는 야요이조기(彌生早期)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삼과 그 제직 기술도 전파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삼베는 포의 품질을 포의 정세도로써 가늠하는데, 그 정세도는 포폭 간에 정경된 날실(경사)의 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한 포폭 간에 80올의 날실이 정경되었을 때를 1승(升)이라고 하고 승수가 커질수록 섬세해지는데, 중국의 경우는 30승이 최정포(最精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40승 포까지도 제직해 당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더 섬세한 대마포를 제직했음이 나타난다.

삼베의 사용에 있어서도 중국의 경우 15승이 조복(朝服)에 사용되어 의복의 최고 승수였는데, 신라에서는 28승까지 의복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복식금제의 기록이 있어, 중국보다 훨씬 섬세한 포로 의복을 지어 입었음이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미적 특성이 섬세하고, 단아함을 추구하는 데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직조 기술에 있어서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걸출한 세직물(細織物)의 제직 기술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베는 삼국시대와 그 이전에는 마·마포·포·세포로 불렸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마·마포·포·세포·세중마포(細中麻布)·흑마포(黑麻布)·생평포(生平布)·생중포(生中布)·소평포(小平布)·광평포·중포·관포 등으로 명명되어 제직되었다고 한다. 특히 고려의 세포와 흑마포는 특산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북포(北布)·영포(嶺布)·안동포(安東布)·강포(江布) 등 좋은 품질의 삼베가 제직됐다.

섬유는 크게 천연섬유, 인조섬유, 재생섬유, 합성섬유로 분류되지만, 가장 친환경적인 것은 단연 천연섬유인데, 지속가능성면에서 보자면 견이나 모로 대표되는 동물성 섬유보다는 면이나 마(삼베)가 앞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베는 삼 줄기의 인피섬유를 이용해서 직조하게 되는데, 표백하면 상하기 때문에 특유의 누런 색상 그대로 사용한다. 뻣뻣하고 신축성이 적으며 잘 늘어나지 않아서 오늘날에는 수의 외에는 옷감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대신 질기고 물에도 강해 로프·카펫·구두나 가방을 만들 때 쓰는 바느질용 실, 침구류 등에 사용된다. 삼베의 두드러진 특성으로는 통기성이 뛰어나서 수분을 빨리 흡수, 배출하고 자외선을 차단하며 곰팡이를 억제하는 항균성과 항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과 장점이 많은 천연섬유 삼베의 생활에의 활용 방안들이 폭넓게 모색되어지길 기대해본다.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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