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 [10]죽방멸치길(6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 [10]죽방멸치길(6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8.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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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쪼름한 땀내 가득한 아버지의 바다
남해 물건항 물건방조어부림은 해안가에 있으나 깊은 산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죽방멸치길은 난이도 ‘별 2개’로 남해바래길 총 16개 코스 중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1코스 읍내바래오시다길, 2코스 비자림해풍길, 별 1개를 제외하고 그 다음으로 안정된 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편안한 걸 떠나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물건방조어부림길이 있어 꼭 걸어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바닷가 해안을 따라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등 1000여그루에 달하는 울창한 숲이 조성돼 있어 싱그러울 뿐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여름 신록이 춤을 추거나, 가을날 붉은 노을이 깔리거나, 한겨울 눈보라가 치거나 봄날 어스름한 안개가 끼어도 꾸밈없이 그대로 꿈을 꾸는 듯 낭만의 길이 연출된다. 그러한 생각 한 모롱이에, 오랜 옛날 선인들이 힘들고 팍팍했던 삶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지혜를 한번 되뇌어 보고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덤이다. 통영과 거제도 섬들 사이 동해에 떠오르는 일출 장면도 압권이다.

주로 상에 있는 죽방렴 곁을 걷다보면 시간의 역전을 경험할 수 있다. 자그마치 500년 전 아버지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이곳 죽방렴에서 바닷고기를 잡아 올렸다. 지금 당신의 아들들이 예와 조금도 다름없는 방식으로 바닷고기를 잡아 올린다. 당신의 재빠른 손, 등 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도 그때 그대로이다. 선인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버지의 바다이다. 이외 남해청소년수련원,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화천이 특징적이다.

 

▲독일마을 앞 대로변 출발→물건마을→물건방조어부림→내동천마을→둔촌마을→전도마을→창선교 남단 멸치쌈밥거리 도착.
총 9.9㎞, 4시간 내외 소요. 난이도 ★★

 

▲오전 9시 30분, 독일마을 앞 대로 3번 국도변이 출발점이다. 바래길 앱을 켜면 곧바로 마을 아래 물건방조어부림 방향으로 안내해준다.

마삭줄과 담쟁이가 돌담을 타고 넘어가는 물건마을 가옥들이 정겹다. 천연기념물 150호 물건방조어부림이 길을 막는다.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농지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다. 함양 상림, 하동 송림이라면 남해에는 물건방조어부림이다. 물고기가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어 고기떼를 유인하는 역할도 한다. 17세기에 조성됐으며 방조림과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해 방조어부림이라고 한다. 길이 750m, 너비 40m 나무 높이 15m이다. 낙엽수인 팽나무, 푸조나무, 참느릅, 말채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무환자나무, 상록수인 후박나무가 주류다.

19세기 말, 숲에 있는 나무 일부를 무단으로 베어냈다가 그해 폭풍이 닥쳐 마을이 큰 피해를 입은 일이 있다. 그래서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구전돼 사람들은 이 숲을 신주 모시듯 한다. 지금도 큰 이팝나무를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사를 지내면서 안위를 빌고 있다. 2006년 한국내셔널 트러스트와 유한킴벌리 주최로 열린 ‘잘가꾼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1㎞에 달하는 숲길을 걸어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바닷가를 걷는데 바다가 잘 안 보이고 산속을 걷는 듯 한 마법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바래길에서 보이는 독일마을


숲을 벗어나 독일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오른쪽 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우뚝 선 중형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마을, 물건마을, 물건항, 일출 등 조망권이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언덕을 넘어가면 내동천마을이다. 회관 앞에 370년 된 느티나무에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나와야 했다.



 
내동천 느티나무
참새가 먹어버린 벼이삭


출발 1시간 만에 꽃내중학교 옆 논길을 따라간다. 참새가 덜 여문 벼이삭을 쪼아 먹어버린 탓에 벼가 병충해 입은 것처럼 허옇게 변해버렸다. 한해 농사를 망쳐버린 농업인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녀석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고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논가에 있는 둠벙은 물이 많지 않은 남해사람들의 지혜로운 농사법 중 하나, 비가 내릴 때 둠벙에 물을 가뒀다가 갈수기 때 퍼 올려 논물로 활용했다. 얄밉게 영악해져버린 참새 녀석들 앞에서 이 둠벙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



 
기숙형 통합학교 꽃내중학교


꽃내중학교는 공립 기숙형 거점중학교, 남해군 삼동면과 고현면의 남수중, 물건중, 고현중 3개교가 통합된 기숙학교이다. 2019년 3월 1일 개교해 현재 100여명의 학생·교직원이 생활하고 있다.

3번 국도를 만나 100여m 정도 걷다보면 동천교 위를 지나게 된다. 동천교 아래에 흘러가는 시냇물이 지방하천 화천이다. 바래길은 이때부터 바다에 닿을 때까지 이 화천변 논길을 따라간다.

화천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남해 유일의 민물계곡으로 남해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앞선 화전별곡길 나비생태공원 주변에서 만난 계곡이 이 화천의 원류다. 이 물길이 굽이 돌아 삼화천과 합수하고 이곳을 지나 1.5㎞를 더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구간에 바다와 내륙의 민물을 오가는 어류가 주로 서식한다. 바다 쪽에는 조개류와 복어, 바닷고기가 있는 반면 내륙 쪽에는 장어, 은어, 황어, 참게가 서식한다.

요즘은 물고기가 줄었지만 과거 30∼40년 전 만해도 맨발로 물에 들어가면 장어와 은어가 발에 채이고 손에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잡히는 장어의 고향은 필리핀 심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이다.

장어는 민물 남해에서 성체가 된 뒤 산란을 위해 수만㎞의 길고 긴 여행 끝에 필리핀 먼 바다 심해로 들어가 새끼를 낳는다. 깊이는 1만1034m, 기압 1만6000psi에 달하는 곳에서 짝짓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끼는 다시 모천인 남해로 조류에 의해 떠밀려와 어미로 성장한다. 장어의 일생은 그야말로 신비로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원에서 왔다는 피서객들이 몸을 물에 담근 채 다슬기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많이 못 잡았다”며 내미는 손에는 꼬리가 매끈매끈한 다슬기가 강변의 강한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남해청소년수련관에서 창선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


꽃내갯벌체험마을에서는 학생 및 가족 단위로 기수지역 조개잡이 등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청소년수련원을 관통해 두 번째 동산을 넘어가면 드디어 지족해협이 나타난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내륙으로 들어오기를 몇 차례, 출발 3시간이 넘은 12시 52분께 죽방렴 관람대 앞을 통과한다.

한국의 자연유산 죽방렴은 지족해협의 급한 물살을 이용한 전통어로방식이다. ‘대나무어사리’라고도 한다. 좁은 바다 물목에 참나무 지지대 300여개를 갯벌에 박아 대나무발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과 거꾸로 해서 V자로 벌려 설치한다. 목이 좋은 곳에는 V자형이 두개가 겹쳐져 W형자도 있다. 조수 간만으로 인한 물살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를 원형의 임통에 가둬 잡는다.



 
죽방렴개념도


조선 예종 원년 1469년에 편찬한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에 방전(죽방렴)에서 석수어(조기), 홍어, 문어가 산출된다는 기록이 있다. 죽방렴은 현재 지족해협에 약 23개가 설치돼 있으며 이를 이용해 5월에서 7월 사이 고기를 잡는다.

직접 관람할 수 있는 데크시설이 돼 있어 다가가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지족해협의 자연경관과 우리나라 전통어로방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종착지인 삼동면에는 인근에서 잡은 멸치로 조리한 음식점 멸치쌈밥거리가 성업 중이다. 갈치구이와 조림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김윤관기자



 
남해 물건항 물건방조어부림은 해안가에 있으나 깊은 산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남해청소년수련원
물고기가 잡힐 것같지 않은 지름 4m규모의 미니 석방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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