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2)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2)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8.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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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 선생의 ‘수필’은 우선 수필이 메타포를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고, 말꽃이 되는 글꽃이라면 당연히 비유를 써야 함을 분명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원래 메타포라는 것이 아시다시피 그 개인이 지닌 지극히도 주관스럽게 상상된 산물이라 할 것이기에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난이요 학이요’ 했다고 해서 그게 뭐냐고 의심하거나 따질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글에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절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씌어지는(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하다못해 ‘수필문우회’에서 이 글을 ‘집중조명’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인 내로라하는 분들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와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다’를 놓고 집중조명을 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답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 ‘수필’과 함께 도마 위에 올랐던 글이 금아 선생의 작품 ‘인연’인데요, 이게 플롯이 없는 작품이냐고. 자기는 이렇게(인연) 쓰면서 이게 무슨 말씀이냐? 글 한 편 쓰려면 미리 계획을 세우고 치밀한 구도를 짜느라 머리를 앓고 좋은 문장을 쓰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런데 쓰이어진다니?

그렇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허섭스레기가 아닌 담에야 어찌 고뇌 없이 쓰여지는 글이 있겠습니까? 글 읽기도 그렇습니다. 까마귀 날아가는 활 보기가 아닌 담에야 어찌 고심 없이 읽을 수 있겠습니까? 글월 고쳐 다듬는 행위를 한 마디로 ‘퇴고’라 하게 했다는 가도(779~843)도 글짓기의 어려움을 ‘두 구절 지으니 삼 년이 갔네’라 했다는데, 서른 줄 시를 일 년 내내 고쳐 써서 마지막에 두 줄을 남겼다는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일화도 있지요.

폴란드 태생 조지프 콘래드(1857~1924)라는 소설가는 글 쓴다고 날마다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아내에게 밖에서 문을 잠그라고, 그래야 집중이 된다고. 점심을 먹으러 나온 콘래드에게 아내가 물었대요. 오전 내내 뭘 썼느냐고. 콘래드가 대답했대요. “쉼표를 하나 뺐어.” 점심을 먹고 그는 또 방에 박혔고, 아내는 문을 잠갔고, 저녁 먹으러 나온 남편에게 오후 내내 뭘 작업했냐고 아내가 물었고, 콘래드는 대답했대요. “오전에 뺐던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어.” 그러니까 콘래드는 그날 하루 종일 쓴 글이 쉼표 하나를 뺐다 넣었다 했다는 이야깁니다.

만약에 당신이 이 쉼표를 어디에 놓을까, 토씨로 어느 것을 쓸까를 고심하지 않는 글쟁이라면 더는 펜을 들지 않기를 권합니다. 괜히 공해에 기력을 보태느니 편히 쉬는 게 본인에게도 득이겠지요. 이런 노력은 글의 수준보다는 자기 글에 자존심을 거는 태도에 있을 것입니다.

‘수필’이 비유를 입고 있으니, 플롯이 없어도 된다느니, 씌여지는 글이라니, 금아 선생이 이런 말을 한 데에는 다른 속뜻이 있지 않을까?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이런 의심도 해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제작의 규준과 치수와 표준을 손수 만드는 경우, 우리의 창조적 충동이 우리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경우, 그때 우리 작품 속에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다는 이 글월에 ‘우리’ 대신에 ‘내’나 ‘지은이’를 넣어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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