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한여름 지리산 종주산행은 매력 덩어리다. 해발 1500m이상의 고봉준령으로 이어진 능선을 유영하듯 걷다보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산행 중 비라도 만날라치면 몽환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된다.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는 자줏빛 산오이풀꽃이 도열하듯 반겨주고 주황색 동자꽃, 산뜻한 색감의 숲이질풀꽃에 노루오줌꽃, 큰까치수염, 참취꽃, 구절초, 산수국이 산상화원의 비경을 연출하니 산객의 발길이 여름철 내내 끊이질 않는다.
광복절 연휴를 맞아 벼르던 지리산 종주산행을 다녀왔다. 성삼재를 출발해 세석대피소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토요일 아침 8시 성삼재에 도착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는 이미 산객들로 붐벼 생동감이 넘쳤다. 임걸령 삼도봉 연하천 벽소령을 거치면서 만났던 등산객 절대 다수가 서울 등 수도권 사람들이다. 전날 밤 11시 출발한 동서울-성삼재 구간 노선버스를 타고 와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한 등산객들이다. 광복절 연휴를 앞둔 터라 전날 동서울-성삼재 버스는 임시 편까지 5대를 투입해도 매진될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수 백 명의 등산객이 서울발 성삼재행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발 빠른 사람들은 당일 종주를 마치지만 대부분 벽소령이나 세석, 장터목산장에서 1박 하고 다음날 백무동이나 중산리 또는 대원사 방면으로 하산해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팬데믹으로 닫혔던 대피소가 다시 문을 연 덕분에 전국의 산객들이 찾아와 지리산은 요즘 생기가 넘친다. 덕분에 지리산자락 사람들이 모처럼 환한 표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성삼재 가는 버스가 정작 경남도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다. 도민은 물론 서울 아닌 지방 사람들에게는 위화감만 조성하는 노선일 뿐이다. 함양과 인월이 경유지로 되어 있지만, 서울에서부터 만석이 되다보니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구조다. 사정이 이러니 진주에서 성삼재를 가려면 함양이나 인월, 구례까지 대중교통편으로 가서 5~8만원이 드는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종주산행 중 선비샘에서 만난 진주 산악인 2명은 성삼재 가는 택시를 타고 가려다 비용부담과 연결교통편 부재로 궁리 끝에 중산리를 출발해서 벽소령에서 1박한 다음 성삼재를 지나 정령치까지 8㎞ 정도 더 갈 예정이라 했다. 정령치에 가면 오후 2차례 인월 행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산악인들의 성삼재 접근성 불편의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필자 역시 적지 않은 교통비용을 부담하고 성삼재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함양이 제대로 된 지리산 종주산행의 전진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기왕 개설되어 있는 동서울-함양-성삼재 간 노선버스를 수요가 집중되는 주말만이라도 버스를 증편해서 비수도권 산악인을 함양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마련이 필요하다. ‘함양에 가면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함양은 지리산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만큼 함양군에서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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