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민주화의 성지, 마산
[경일춘추]민주화의 성지, 마산
  • 경남일보
  • 승인 2022.08.17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주 (마산지역문화연구소장)
임영주 마산지역문화연구소장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기 지역의 특성과 볼만한 곳을 찾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하고 새로운 역사 정립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창원특례시는 2010년 마산·창원·진해시가 통합하여 새롭게 태어난 도시다. 통합 전 마산은 민주화, 창원은 공업화, 진해는 벚꽃 등을 강조하면서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다.

마산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표현하면서 시민들이 즐겨 사용한 말이다. 80년대까지는 ‘마산이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는 말이 있었던 곳이다. 그 말은 지역민에게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하는 자랑스러운 말이었다. 그것은 3·15의거와 부마항쟁을 통하여 두 번이나 정권이 바뀐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3·15의거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전국 최초의 유혈 항쟁이다. 1960년 3월 15일 실시한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보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타도를 외쳤다. 시위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여러 사람이 사망했다. 계속된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가 했는데, 4월 11일 행방불명된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마산 중앙부두 앞에서 떠오른 것이다.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며 소문을 듣고 확산된 시위는 4월 19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은 발포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부마항쟁은 유신독재를 타도하기 위하여 1979년 10월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시작한 시위가 확산되자, 18일 정부에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내 곳곳에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배치되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시위는 마산으로 옮겨왔으며 경남대 학생들과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는 20일 위수령 발동으로 끝이 났다. 민중들의 유신철폐 투쟁이 강해지자 권력 내부도 분열하여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면서 유신 체제는 붕괴되고 말았다.

이후, 마산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도 민주헌법쟁취 등을 요구하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곳이다. 1960년 4월혁명의 기폭제가 된 3월 15일과 1979년 유신시대를 종식시킨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 되었다. 마산은 민주화의 성지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고장이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고 정의로운 도시, 부정부패가 없는 양심이 지배하는 마산으로 정착되어 동북아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창원특례시 이미지에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