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설 (숲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안전 불감증, 도덕 불감증, 위기 불감증 등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는 개개인의 다양한 불감증 증상으로 나타난다. 성인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닌 유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가을 있었던 일이다. 큰 가마솥에 장작을 지펴 아이들과 수확한 고구마를 삶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솥에 다가가더니 맨손으로 뜨거운 가마솥뚜껑을 턱 잡는 것이다. 말릴 새도 없었다. 너무 놀라 찬물에 아이 손을 담그는데 그제야 아프다고 울었다. 그 부모님과 상담 후 연유를 알게 되었다. 집에서 혹여나 아이가 다칠까봐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아이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걸 알았다. 아이에게 위험하다 싶은 것들은 모두 부모가 미리 제거하고, 아이 귀에 못이 박히게 위험성을 말로 알려주면서 키웠는데도 아이는 뜨거운 열기가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치게 될지 전혀 감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 느끼고 본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안다. 조심성과 준비성이 철저한 부모가 아이를 잘 보살피기 위해 행한 돌봄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혹자는 아직 세상에 미숙한 아이에게 실제로 뜨거움을 느끼게 하고 아픔을 겪어보라 해야 되는지 되묻기도 할 것이다. 경험과 지식은 직접 겪고 당하지 않아도 눈과 귀. 소리 등으로도 쌓인다. 뜨거운 것 옆에서 느껴지는 열기, 누군가 실수로 다쳤을 때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험적 감각이 생성되는 것이다. 구강기 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입으로 탐색해 볼 기회. 온 집안을 기어 다니면서 서랍을 열고 닫으며 만져 볼 촉각발달의 기회. 여러 물품들을 두드리고 던지면서 무게와 힘 탄성 등을 가늠해 볼 기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싸우고 화해하면서 또래 관계를 형성할 사회적 기회 등을 안전과 돌봄이라는 명분 속에서 박탈 당한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다니는 부모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의 눈 앞에는 스마트폰을 둔 고급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부모들이 많다. 유아기 때 생성되는 정서적 안전감은 부모와 밀착된 신체접촉 속에서 눈으로 전하는 사랑의 언어들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불안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화려한 화면과 등 뒤에서 있는 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란다. 실패 할 기회, 다칠 기회를 줘야 한 걸음씩 나아가며 세상이 만만해 지는 것이다. ‘세상에 뻘 짓은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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