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문학 기행…교가 작사 유치환 흔적 탐방
모교 찾아 후배에 “글 외부에 선보여라” 조언
“달빛은 늪 물 위에 홑이불을 다리는가/내도록 들끓다가 이제 막 잠든 우포/먼 발치 잠의 윗목에 우연처럼 눕습니다(…중략…)”
지난 19일 오후 거제시 상문동 한 북카페, 한분옥(72) 시조시인이 자신의 작품 ‘우포’를 읊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온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류 문인 25명이 앉아 저마다의 관점으로 낭송을 감상했다.
지난 5월 전국 각지의 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 70여 명이 모여 창립한 ‘일신문학회’가 지난 19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창립 후 첫 사업인 문학 기행에 나섰다.
기행에 나선 문인들은 먼저 모교인 진주여고를 찾아 후배와 교직원들과 시간을 보낸 후 거제로 이동해 낭송회, 문학 답사 등을 이어갔다.
문학기행을 알리는 손 현수막에는 시인 유치환이 가사를 지어 시적인 가사가 특징인 진주여교 교가 도입부 ‘오늘도 진리의 휘영청 푸르름 아래’라는 문구가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찾은 모교에서 이들은 점심시간을 뒤로하고 도서관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후배들을 마주했다. 평균 연령 70세의 노문인들은 수십 년 전 자신들처럼 문학을 향한 관심으로 귀를 쫑긋거리는 후배들을 보며 먼 옛날 도서관을 누비던 시절을 떠올렸다.
기행 참여자 중 막내 정살구(47) 작가는 후배들을 향해 “글을 혼자서만 쓰며 가둬 두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어떤 경로로든 내보내라”며 “‘누가 보랴?’ 하지만 누군가는 볼 것이고 ‘누가 좋아하랴?’ 하지만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인들은 모교에 표구한 사진과 시 등을 선물한 뒤 거제로 떠났다. 거제에서 이들은 아픈 상흔이 가득한 역사의 현장인 거제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진주여고 교가를 작사한 시인 유치환을 기리는 청마기념관 등을 탐방했다.
문인들의 모임인 만큼 백미는 작품 낭송회였다. 각자 준비해온 시·소설 등 문학 작품을 선후배 문인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선보였다.
낭송 전 자신의 옷차림·분위기·몸짓을 활용해 작품을 100% 표현하라는 주문과 달리, 적지 않은 문인들은 쑥스러움에 뻣뻣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부 문인은 전문 낭송가다운 모습을 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김지연 일신문학회장(81)은 “문학관과 관련 유적 탐방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문학 기행과 다르게 작품 낭송 시간을 가진 것이 우리 문학 기행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지붕 아래에서 문향을 키워온 언니, 동생, 성님, 아우에게 각자의 작품을 선보이며 서로 격려하고 정진하자는 의도였는데, 여느 조직과는 다른 끈끈한 사랑을 바탕으로 기행 안팎을 아주 알차게 채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일신문학회는 올해 거제를 시작으로 매년 1회 이상 문학 기행을 떠날 예정이다. 내년에는 진주여고 17기 선배 박경리 특집 기행에 나설 계획으로, 그의 흔적이 남은 통영과 하동, 강원 원주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편 올해 창립과 함께 창간호를 발행한 일신문학회는 이번 기행에서 발표한 작품 등을 바탕으로 내년 봄 일신문학 제2집을 펴낼 방침이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