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재 (논설위원)
글이란 빌미로 존칭없는 거명에 민망함이 크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시기의 기억, 아마도 1980년 이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때도 흔지 않았던 콧수염에 보우타이를 맨 ‘대통령의 웃음’ 저자에게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당시 반체제인사 상징의 한분으로 김동길 얘기다. ‘국판’ 사이즈 단행본을 어깨춤에 끼고 다녔다. 왠지 폼이 좀 났던 것 같다. 박정희서거 이전에 집필된 원고, 대통령과 관련한 수많은 단상을 옮겨 놓았다. 당연히 박정희 독재체제에 대한 실랄한 비판도 상당했다.
▶모교서 강의하다가 반정부활동으로 해직되고, 만고를 겪으며 복직했으나 일부 운동권 제자들로부터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스스로 말했듯 타의로 정계에 진출해 엄청난 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주 창연한 가을하늘 아래서 타계했다. 거침없는 ‘강골문인’답게 육신과 유물 모두를 내놓고 소박한 가족장으로 억겁의 길로 떠났다. 님의 오성(悟性)은 모방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지였다. 수십년을 더 보내면 비교될 지성인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길지 않은 시간, JP 문하 정당서 특별하고도 값진 훈시를 많이 들었다. 익살, 위트, 직설에 더해 해박(該博)없이 가능치 않은 선문답(禪問答)의 달인, 가히 시대적 거인이며 한편에 감춰진 ‘반골기질’을 잉태시켜준 마음의 영웅이다. 입신 못한 처지, 자격지심으로 지난 20년간 문안드리지 못한 속죄 요량으로 그의 유훈을 낱낱이 새기려 한다. 위대한 발자취로 마땅히 드리워질 천상의 평안한 영면을 함께 희원한다.
▶모교서 강의하다가 반정부활동으로 해직되고, 만고를 겪으며 복직했으나 일부 운동권 제자들로부터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스스로 말했듯 타의로 정계에 진출해 엄청난 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주 창연한 가을하늘 아래서 타계했다. 거침없는 ‘강골문인’답게 육신과 유물 모두를 내놓고 소박한 가족장으로 억겁의 길로 떠났다. 님의 오성(悟性)은 모방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지였다. 수십년을 더 보내면 비교될 지성인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길지 않은 시간, JP 문하 정당서 특별하고도 값진 훈시를 많이 들었다. 익살, 위트, 직설에 더해 해박(該博)없이 가능치 않은 선문답(禪問答)의 달인, 가히 시대적 거인이며 한편에 감춰진 ‘반골기질’을 잉태시켜준 마음의 영웅이다. 입신 못한 처지, 자격지심으로 지난 20년간 문안드리지 못한 속죄 요량으로 그의 유훈을 낱낱이 새기려 한다. 위대한 발자취로 마땅히 드리워질 천상의 평안한 영면을 함께 희원한다.
정승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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