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42)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42)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10.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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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무엇이 생긴다는 것은 있었던 무엇이 죽거나 달라진 결과지요. 원시 수렵에서 농경시대로, 산업화로 이젠 정보화 시대로, 이를 사회의 변천이니, 역사의 흐름이니 하는 말로 그 변천 과정에 있었을 어떤 이들의 참혹한 슬픔은 발전이라는 과정에 수반되는 다반사라 여기면서, 인류는 끝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동물이 인간들입니다. ‘가치의 변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하게 마련이다.’ 니체가 말했다고 합니다.

인간들에게 욕심이나 욕망이 없다면 달라지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러면 사랑도 없을 테니 삶이 삭막하겠지요? 이 욕망 덕분에 달나라로 우주로 여행을 가게 됐고, 백세 시대가 됐다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지만, 폭탄 하나 터지면 찰나에 수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꼴까닥할 운명에 우리가 놓였습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천하의 재앙 중에 욕심 없는 것보다 참담한 일은 없다’고 했다네요. 자기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욕심, 이 욕심에는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불행하게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욕망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과학은 인문(人文)을 가꾸지 않아요. 물질문명이 풍요를 불러올수록 인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되지요. 즈믄 해 앞사람들보다 욕망은 더 커졌지만, 사람됨은 앵쪼그라진 게 현대인이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삭막함을 느낍니다. 아마 한 백 년 뒤에는 연암 선생이 말한 ‘부끄럼’이란 말이 욕심에서는커녕 사전에서도 사라지고 물질은 더 풍요해져서 그 시대를 사는 인간들은 불행을 밥 먹으며 살지 싶습니다.

인간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문학은 시대의 변천을 따라, 때로는 사상을 선도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게 되지요. 말이 달라지면 세상이 바뀌듯이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제 몸에 걸맞은 말본새를 불러왔는데, 그게 ‘산문’이라 합니다. 정보화 세상은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따라서 인간의 사고도 뒤숭숭해지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돼 불타는 불만을 싣고 궤도도 없는 도로를 질주하면서, 이른바 산문시대가 열렸다는 겁니다. 할 말이 많아서, 말함에 제약이 없는 행태로 말하기가 바뀐 거지요.

시를 소설처럼 쓰면 소설이 되고 소설을 희곡처럼 쓰면 희곡이 되고. 하지만 수필은 시처럼 쓰든 소설처럼 쓰든 희곡처럼 쓰든, 수필이 되고 말아요. 시·소설·희곡 등은 순혈주의를 지키는 배타주의 장르지만 수필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지라, 이를 이어령 선생은 ‘수필은 T세포를 지닌 장르’라고 했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시대가 글로벌시대일진대, 이 시대의 다기한 사회 현상을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로 자리 잡은 게 수필입니다.

말 중에서 꽃이 되는 말, 그게 좋은 글이지요 하지만 아무 데나 아무 때나 피는 꽃이 어디 있나요. 산문의 꽃, 사람 가슴을 데우는 에세이·수필도 그러합니다. 언어의 마술사가 될 수밖에요. 김춘수 선생은 이렇게 마술을 부렸어요. 오랑캐꽃. ‘너는 서서 있고나/ 고요하고 잔잔한 거기에// 너는 서서 있고나/ 신이 주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찌그러져 기울어진 나쁜 세상에서/ 인정스런 웃음을 띄우고// 오랑캐꽃! 너는 거기에 서서 있고나.’ 글꽃지이여, 신이 주신 모습 그대로 이 나쁜 세상에서 그대 거기에 서서 있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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