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태봉산 아래 산청박물관
[경일칼럼]태봉산 아래 산청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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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두 줄기 산등성이 뻗어 내리고 앞에는 유유히 강물이 흐르고 있다. 등성이를 다듬고 화단과 꽃길을 조성하여 눈길을 끌고 세계적 조각가 작품을 진열한 생초국제조각공원이다.

느티나무 옆 2단 대리석 좌대 위에 팔등신 여인이 다리를 오른쪽으로 꼬고 앉았다. 머리는 귀 위로 돌려 둥글게 말아 올렸고, 두 눈은 살며시 감은 듯하며 목은 길고 팔을 내려 하얀 천 위에서 오른손 바닥에 왼손을 포갰다. 프랑스 작가의 ‘님 에게’라는 작품이다.

골짜기에서 올려다보니 산등성이 만나는 구릉에 드문드문 소나무가 있고 사이로 봉분이 보인다. 산청 생초고분군(경남 기념물 7호).

이곳은 생초면 어서리 뒷산 해발 200~240m 지점 구릉지이다. 정상부로 올라갈수록 대형무덤이 있고 아래쪽으로 중소형 무덤이 분포되어 있다. 도굴과 농경지 개간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2~3기만 남았다. 원래는 100여기가 분포되었고 가야시대 무덤으로 보인다.

또렷한 봉분에 올라 내려다보니 물은 산을 만나 크게 휘돌고 멀리 다리 위로 차량들은 좌로 빠져나가고 우로는 들어오고 있다. 아래로 꽃밭 속에는 사람의 물결이 일렁거린다. 정상부로 갈수록 대형무덤이 있다는 뒷산으로 길을 잡았다. 경사가 심하고 한적해 마음이 흔들리지만 다져진 미끄럼방지깔판 흔적에서 마음을 다잡고 오른다. 슬쩍슬쩍 모습을 보여주는 봉우리는 기대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상아래 자재가 쌓였고 도르래에 걸린 물자 운반 통이 있어 ‘대형무덤을 보수하는구나!’ 마음이 평정된다. 로프를 잡고 한참을 오르자 철제와 데크를 조합한 전망대이다.

정상에 무덤 하나 보이지 않고 커다란 자연석에 어머니 체내에서 아이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뜻의 胎자로 시작하는 태봉산(胎峰山)이라 새겼다. 태반이 산 아래 무덤과 연결되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모양새이다.

뒤로 돌아가자 다듬은 돌에 태봉일출제단(胎峰日出祭檀)이라 새겼다. 힘들게 올라 왔으니 눈을 크게 뜨고 보는데 제단의 ‘단’자가 생소하다.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다른 곳과 구별해 마련한 壇으로 알았건만 박달나무를 뜻하는 檀을 사용한 것이다.

박달나무 잎은 어긋나고 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으로 가장자리에는 작은 톱니가 있다. 온대지방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에 속한다. 단군 왕검 즉위년을 기원으로 하는 단기에도 檀을 쓰는 것을 보면 박달나무는 우리 역사와 인연이 깊고 영험하다는 것이려니,

정상에서 사방을 잘 살릴 수 있어 초소로 역할을 했겠다. 제단을 기준으로 檀자 너머는 해 뜨는 동쪽으로 고분군을 가리키고 남쪽은 붓 끝 닮은 봉우리는 필봉이다. 북서쪽으로 지리산이 둘렀고 남서쪽으로 신라에 금관가야를 넘겨 준 김유신 증조부 구형왕의 능이 자리 잡은 왕산이다.

밝아진 눈으로 콧노래 부르며 내려온다. 오르면서 지나쳤던 봉분 사이에 ‘崇政大夫…’의 비석을 보게 된다. 긴 시간을 건너 명당자리를 알아보고 조상을 모신 후손이 예사롭지 않다.

강물과 인접한 산자락에 효율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산청박물관. 산청은 금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세력권에 있었으나 400년 신라의 요청으로 광개토대왕 5만 군사의 남정으로 가야연맹체의 김해 금관가야 주도에서 고령 대가야 주도로 변화되면서 대가야에 속하게 된다.

생초지역은 경호강, 남강,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여러 가야와 백제, 신라, 왜(생초 9호, 스에키, 청동거울)의 주변 세력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성장 발달했다. 생초 M13호의 주곽에서 단봉문환두대도가 출토됐다. 둥근 고리는 청동으로 주조한 다음 금박을 씌우고 표면에는 마주보는 용을 표현했다. 고리 내부에는 금속제 봉황을 배치했다. 백제, 신라, 가야왕과 지배자가 묻힌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M13호 주인공은 6세기 생초지역의 지배자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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