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했던 기억
[경일춘추]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했던 기억
  • 경남일보
  • 승인 2022.11.1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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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차가운 하늘 아래 흰 꽃이 핀다. 한천(寒天)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 햇볕에 한천을 말리셨다. 눈꽃처럼 새하얘진 한천에 오방색 천연염료로 물을 들이면 잔치음식이 됐다. ‘오방색묵 잡채’는 그리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이토록 고운 교방음식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계승이 끊겼다. 일제의 수탈은 날로 심해졌고 신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진주에 팽배했다. 남해산 한천을 수탈한 일제는 양갱의 원료로 삼았다. 진주에도 한천묵이 아닌 양갱이 유행했다.

1908년 진주부 통영에 정착한 일본인 핫토리 겐지로는 1920년 3월 통영통조림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통조림과 함께 덴부(도미살로 만든 어묵)를 생산했다. 에도시대 때부터 일본의 길거리음식 패스트푸드로 인기를 끌던 어묵도 그렇게 진주까지 상륙했다. 일본식으로 일출정(日出町)이라 명칭을 바꾼 본성동은 일인들의 거주지였다.

1925년 경남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 진주는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무척 번화한 도청소재지였다. 서울에 명월관이 있었듯, 진주에는 망월관이 있었다. 망월관은 일본인이 지은 단층 건물로 당시 진주에서 가장 큰 조선요릿집으로 공연 무대가 설치된 현대식 공간이었다. 그러나 상업화된 요리상은 조선요리와 외식이 뒤엉켜 전통의 이름이 무색했다.

망월관 외에도 금곡원 군현관 진주관 등 조선 요릿집과 키요미 오타후꾸 다코히라 등의 일본요릿집이 성업 중이었다.

진주의 요릿집도 전통이 아닌 근대화된 조선을 표방했다. 무엇이든 신식이 아니면 외면당했다. 코스는 일본식 마즙부터 시작했다. 서울 명월관에 재즈 댄스와 샐러드, 햄 같은 신식문화가 유행하였듯, 권번시대 진주의 상업화된 밥상에는 풍부한 해산물을 재료로 일본의 스시 문화가 빠르게 유입됐다. 덴부 김밥도 이때부터 유행했다. 50년대에는 진주에 신식요리 강습소까지 생겼다. 외세에 의해 계승이 끊인 교방음식을 찾아 복원하는 것은 진주의 역사를 따라 걷는 나만의 즐거운 여행이다. 좋은 쌀로 지은 밥, 지리산 생수로 담근 장, 오색 고명을 얹은 색채의 향연. 진주였기에 가능했던 풍요한 교방음식의 맛을 그려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잔칫집 과방(음식을 준비하던 처소)에는 교방음식의 잔재가 있었다. 어머니는 유명 숙수답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어를 오리고 가오리찜은 색색가지 고명으로 마무리하셨다. 떡 하나마다의 서로 다른 빛깔, 다식판에 꼭꼭 박아낸 송화의 향긋함, 그것이 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했던 내 유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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