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내 인생에서 가장 오만했던 순간
[경일칼럼]내 인생에서 가장 오만했던 순간
  • 경남일보
  • 승인 2022.11.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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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원장)
어인준


그 순간은 18년 전 ‘세상과의 이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그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 고민의 끝에 죽음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부족한 근거로 성급한 결론을 내렸던 가장 오만했던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어떤 논리보다는 반복되는 생각에 의해 강화되어버린 확신이었다. 마치 깔때기에 부은 것처럼 모든 일상들이 최종적으로는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모여들었다.

자폭버튼을 눌러 버린 컴퓨터처럼 습관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가장 오만했지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오만해져 버렸던 순간이라고 바꿔 이야기하고 싶다. 동물도 자살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자살은 고등한 사고력을 가진 인간으로서 한 개인의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인의 지인들로서는 죽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슬픔을 이겨내고 위로 받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또 고인은 이왕이면 자신의 죽음을 세상의 변화를 위해 위대한 메시지를 남긴 순교처럼 미화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살은 우울증이라는 정상적인 사고회로의 특이한 고장의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 의학적인 판단이며, 내가 직접 체득하고 확인한 결론이기도 하다.

미화되지 못한다고 해서 우울증 환자의 고통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많은 시간을 유쾌하지 못한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은 정신의학적 응급상황에 해당하므로 즉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환자가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족과 이웃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도움을 준답시고,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고장 나버린 우울증 환자에게 나약한 생각이라고 질책하는 것은 역효과일 뿐이며, 살아 있는 것이 더 낫지 않냐는 논리적인 설득도 당장은 유효하지 않다. 대화와 설득보다는 정상회복을 위한 전문적인 치료, 운동, 충분한 휴식이 보장된 일상생활의 복구가 반드시 선행될 수 있도록 행동으로 도와줘야 한다.

안타깝게도 수능성적 비관에 의한 자살은 매년 발생하고 있다. 평소 건강하고 행복했던 학생이 오직 수능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충격을 받고 자살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수능성적이 잘 나오는 것만이 그동안 견뎌오던 불행을 반전시킬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던 학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생각 자체가 주체적인 판단이라고 보기보다는 오랜 우울증으로 인해 왜곡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 성적이 잘 나왔더라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불행이 해결되지 않으면 또다른 명분을 찾아 죽음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결국 수능성적 비관으로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수능성적 때문에 죽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라고. 진짜 원인은 아플 때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니 우선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해진 다음에 천천히 생각하자고. 끝으로 이 글을 통해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제2의 생명을 선물해 준 의료진 및 가족들과 당시 여자친구로서 끝까지 힘이 되어준 20년지기 사랑하는 아내 이지원 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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