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진주 헌혈왕
[천왕봉]진주 헌혈왕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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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치명적 출혈로 아들에겐 수혈이 다급하다. 흔치 않은 혈액형, 다섯 살짜리 누이의 피 말고는 급히 구할 데가 없다. 아빠가 물었다. 아가야, 오빠를 살리기 위해 네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잠시 생각한 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끝난 뒤 아빠가 딸에게 ‘네가 오빠를 살렸다’고 따스이 말했다. “아, 좋다. 아빠, 근데 난 언제 죽어?” 피를 주면 자신은 죽는 건 줄 알았던 거다.

▶다섯 살 딸아이를 와락 껴안은 아빠 눈물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요즘 온라인에 떠도는 이 영상 이야기는 허구일지 모른다. ‘다섯 살 누이’의 설정이 잔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기억 속 이 영상을 불러낸 건 까닭이 있다. 동지 무렵 혹한에 들려온 한 헌혈왕 청년의 기사를 읽다가 문득 매칭되는 데가 있어서다.

▶스물아홉 살 청년 윤정렬씨. 올 한해 22번의 혈소판 헌혈을 해 진주시 올해의 헌혈왕이 되었다. 지금껏 헌혈 횟수는 자그마치 96번에 이른다. 평생에 한두 번 팔뚝에 채혈 주삿바늘 꽂아본 기억으로도 ‘난 헌혈한 사람’이란 자부심 가졌던 이의 낯을 화끈거리게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 헌혈에 참여하련다는 그의 수상 소감도 듣기 좋다.

▶이런 분들 덕분인지 진주시민들의 올해 헌혈률이 7.4%다. 전국 평균 5%를 크게 웃돈 거다. 피를 뽑는 게 죽음인 줄로 아는 다섯 살 여아 헌혈과 성인 헌혈의 결이 같다 할 순 없겠다. 하나 위급한 생명을 구하자는 숭고한 생각은 다르지 않을 터. 세밑에 읽은 진주의 헌혈률, 헌혈왕 기사 한 꼭지로 추위에 언 가슴이 녹는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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