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확대경]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병자호란’
[전시확대경]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병자호란’
  • 백지영
  • 승인 2022.12.2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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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후금에서 청제국으로…조선의 노선은

“임진왜란도 아니고 병자호란을 주제로 여는 전시라니, 이걸 어떻게 놓치겠어요.”

광해군 일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이하 박물관)이 특별전 ‘병자호란’을 지난 13일부터 개최하고 있습니다. 진주대첩 역사의 현장인 진주성에 터를 잡고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전시에 나서왔던 박물관이 이번에는 병자호란에 대한 전시에 나선다는 소식에 이른바 ‘역사 덕후’들의 눈길이 쏠렸습니다. 전쟁사 특화 박물관의 새로운 시도가 반갑기도 하고, 그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전시조차 마련되지 못했던 쓰디쓴 패배의 역사 ‘병자호란’을 직시해보자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일 겁니다.

전시는 17세기 초 눈 내리는 겨울밤, 주화파가 주전파가 치열한 논쟁을 펼치던 남한산성으로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구원의 희망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청 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청군에 에워싸여있던 그 상황 속에 당신도 있었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냐고 묻습니다. 크게 4부로 나뉜 전시의 주요 출품작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정온의 시가 있는 석침. 거창박물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1부 병자호란 이전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1618~1627)

◇광해군일기=광해군이 군사 훈련과 군량 확보에 대해 비변사 당상과 논의한 내용을 담은 기록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로, 1608년 2월부터 1623년 3월까지 광해군의 재위 15년 2개월간의 국정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적자인 영창대군으로 인해 즉위 초부터 국왕의 지위가 불안했던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해 정국을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1618년 이후 요동의 정세가 급격히 변했다.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군은 후금군에 패배해 투항했다. 광해군은 전쟁을 피하려 했지만 조정 신료 대다수가 이러한 시도를 반대하면서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났다. 전시를 위해 펼쳐둔 쪽에는 광해군이 군사 훈련과 군량 확보에 대해 비변사 당상과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시를 맡은 학예 연구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으로,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띠지에 한글 번역본이 곁들여져 있다. 이번 특별전 전반에 적용된 방식으로, 출품 서적의 표지만 감상하기보다 어떤 내용이 담긴 어떤 면을 펼쳐놓았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조 금보=광해군의 잘못된 정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1595∼1649)의 어보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이다.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국왕이었다. 1627년 후금군이 의주를 함락하고 평산까지 쳐들어오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옮기는 한편 후금과 강화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두 나라는 형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후금이 군사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후금의 요구는 더욱 커졌고 두 나라의 관계에 위기가 여러 차례 찾아왔다. 결국 1636년 청이 황제 칭호를 사용하자, 조선과 청은 전쟁 상황에 돌입하게 됐다. 1636년 12월 청군의 신속한 진군에 의해,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거하다가 이듬해 1월에 항복했다. 인조는 ‘오랑캐’에 직접 항복한 왕이 됐다.

 

항해조천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항해조천도=인조 즉위 이후 바닷길로 명나라에 가는 사신단의 여정을 기록한 그림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1624년 인조(재위 1623~1649)의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 정사 이덕형, 부사 오숙, 서장관 홍익한이 이끈 사행의 여정이 25폭의 그림에 담겨있다. 당시 조정은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 민심을 수습하고 정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1624년 사행은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다급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외교 활동이었다.

위정철 퉁소. 장흥 방촌유물전시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2부 청 제국의 성립과 조선의 대응(1628~1636)


◇퉁소=위정철이 여진인에게 받았다고 전해지는 철과 옥으로 만든 퉁소로, 장흥 방촌유물전시관 소장품이다. 위정철은 후금에 사신을 가거나 행만포진병마첨절제사 등 북쪽 접경 지역의 장수로 활약했는데, 이 시기에 여진인에게 퉁소를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석침=명나라 연호를 쓰지 못함을 애석해하는 척화론자 정온의 시를 새긴 돌베개로 거창박물관 소장품이다.

숭정이란 연호가 여기에서 멈추었으니/명년에는 어떻게 다른 역서를 펼쳐 보랴/이제부터 산인은 더욱 일이 줄었으니/단지 꽃잎이나 보면서 계절 가는 것을 알리라

 

남한산성도. 영남대박물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남한산성도=17세기 후반 남한산성의 성곽과 주요 건축물을 그린 지도로 영남대박물관 소장품이다. 남한산성은 1624년 총융사 이서(1580∼1637)가 쌓기 시작해 2년 뒤 완성했다. 이 공사에는 승려 각성을 도총섭으로 삼아 전국의 승군을 동원했다. 산성에는 동·서·남·북 4곳의 성문이 있었다. 동문은 좌익문, 북문은 전승문, 서문은 우익문, 남문은 지화문이라 했다. 건축물로는 유사시 국왕이 거처할 행궁, 객관인 인화관, 군사를 조련하던 연무관이 있었다. 산성 안에는 장경사·망월사·개원사·옥정사·남단사·흥사·천주사·동림사 등의 사찰이 있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인조 금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진=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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