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국가보안법과 인권
[여성칼럼]국가보안법과 인권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8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진주여성회 대표)


“창살 없는 감옥이지요.” 노숙인시설의 인권지킴이단으로 활동하며 시설에 거주하는 노숙인과 인권실태를 면담하면서 들은 말이다. 노숙인시설은 복지환경이 훌륭하지만 여러 사람을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기에 규칙이 있다. 그 곳에 머물려면 규칙을 지켜야 하고, 원치 않으면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나가면 딱히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외출과 외박은 시설과 협의하고 나갈 수 있다. 외출하고 싶지만 돈이 없고, 잠시 시설 앞에 산책나가는 것도 일일이 말해야 해서 번거로워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그 분의 말에 갈 곳이 없으니 감지덕지하며 규칙을 지키라고 해야 하는지, 인권이 존중되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곱씹어본다.

오랜 기간 활동한 인권운동가, 민주투사들의 헌신, 노력과 함께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 존재는 우리나라에 ‘인권’이라는 개념을 확산하고 상식으로 만들었다. 사회문제의 어떤 사례이든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인권과 배치되는 법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지난 11월 9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경남을 비롯한 진보·통일운동단체 활동가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들은 현재 압수물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을 당한 경남의 활동가는 하루 전날 병원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주에서 국정원·경찰에게 하루 종일 압수수색을 당한 활동가도 암환자였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냐며 사문화된 법이라 여기며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건만 발생하면 그 진위를 따지기보다 피해를 염려해 거리를 두고, 모두 흩어지고 굳어버린다.

일제 강점기에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며 엄청난 폭력을 견뎌내고 맞이한 해방의 기쁨은 잠시, 이념의 대립으로 민족이 분단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눈 역사를 가진 우리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 우리의 사상은 자유롭지 못했다. 지배세력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철저히 억압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자식과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가며 스스로 검열하고 조심스러워한다. 진실과 정의를 규명하기보다는 살아남아야 하기에 맞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맞서 싸우고 희생되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더 나은 지금이 있다.

헌법 위의 악법이라고 불리우는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을 이름만 바꿔 정부수립 4개월만에 시행된 법이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과 사상과 자유를 억압한다는 입장이 대립하며 74년 동안 존속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 부당한 권력자들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국가안보를 위하기보다는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며 평화와 평등, 인권을 이야기하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규칙을 지키고, 한국이 싫으면 개인이 떠날 수 있으니 자유로운 것일까? 거대한 창살 없는 감옥에 우리가 갇혀 살고 있다. 생각을 가두고, 처벌하는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세상이 변해서 이제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인권이 보장되는 국가로 포장해 있지만 정권이 민심을 잃고 국민의 눈을 돌려야 할 때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은 유린된다. 국가보안법과 인간다운 권리 보장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1999년부터 국제사면위원회와 유엔 인권이사회가 점진적 폐지를 권고했고,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폐지를 권고한 국가보안법, 이제는 박물관으로 보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