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모 논설위원

문경새재 조곡관 부근 지방문화재 ‘산불됴심’ 표석문의 ‘됴심’은 ‘조심’이라야 맞다. 구한말에 세운 것이라 하더라도 조심의 한자 ‘操’는 원래 ‘조’로 읽는 글자이므로 ‘됴’로 쓸 이유가 없는 것. 아마 조심을 됴심의 사투리로 여겨 표준어로 바룬다고 이렇게 썼을 거다. 이처럼 바로잡자는 생각으로 바른 말글을 되레 틀리게 고치는 게 과잉교정(hypercorrection)이다. 길을 ‘질’이라 하는 지역 사람들이 간혹 점심을 ‘겸심’이라 하고, 팔을 폴이라고 하는 데 비추어 콩의 표준말이 ‘캉’인 줄로 아는 사례들이 있다. 새잿길 빗돌 ‘산불됴심’은 요즘 정치권의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불러낸 기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쏘아올린 중·대선거구제 화두는 대체로 잦아드는 형국이긴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여전히 논의 중이다. 일부 찬성하는 의원들이 삼삼오오 웅성웅성 불씨를 이어가고 있는 거다. 하지만 다수 국민들은 한 선거구에 1명씩 뽑는 소선거구제가 그나마 기중 낫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58.5%가 소선거구제 유지를 지지한 것 말이다. 이런 터에 소선거구제를 버리고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건 산불조심을 산불됴심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넌센스다.
대통령이 처음 중·대선거구를 제안했을 때 찬성의 메아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언론들도 이달 중순께까지는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였다. 당장 추진의 파장이 출렁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중·대선거구제는 우리 선거구 제도 논의의 해묵은 단골 주제 중 하나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각종 토론에서 이 생각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는 필시 선거가 너무 뜨거워져 진영간 갈등을 극한으로 몰아간다는 거였다. 승패는 전부냐 전무냐가 걸린 문제이다 보니 속된 말로 명을 떼 건 싸움이 된다는 거다. 이게 단점인 건 분명하다. 사표가 너무 많다는 것을 포함하여 이런 단점들 때문에 옛날부터 중·대선거구제는 잊을 만하면 제기되곤 했다. 실제 우리는 삼사십 년 전 이걸 잠깐 실시해본 경험도 있다.
5공 시절 그때도 결국 국민들의 세찬 요구 끝에 소선거구제로 되돌려 놨다. 지금도 국민들은 대부분 ‘그게 정답’이라고 본다. 복잡하게 할 것 없이 1등짜리만 대표가 되는 게 깔끔하고 개운하다는 거였다. 그랬던 소선거구제를 이런 저런 단점 들먹이며 폐기하고 다시 중·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건 그야말로 부정회귀(不正回歸)라 않을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인들 장점만 있겠는가.
어떤 제도든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는다. 득실의 무게가 비슷하다면 단점은 운영의 묘를 통해 보완해 나가면 된다. 국민 다수가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적어도 내년 총선 이전엔 묻어둬야 할 걸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다수는 소선거구제가 더 낫다고 했다. 이 시점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은 짐(荷)을 ‘김’으로 과잉교정하는 꼴이다. 짐꾼이 “김 나간다 질 비켜라”고 외친다면 우스꽝스럽지 않겠나. 지금은 소선거구제 손볼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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