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아줌마’아니고 ‘돌봄노동자’
[여성칼럼]‘아줌마’아니고 ‘돌봄노동자’
  • 경남일보
  • 승인 2023.02.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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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사람은 생애 중 많은 시간을 누군가의 돌봄에 의지하고 살아간다.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성인이 되어 짧은 시간 독립적으로 살다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다시 돌봄을 받게 된다. 돌봄은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데 돌봄의 주체가 가지는 부담과 노력 등은 오랜 기간 주목받지 못했다. 돌봄의 공간은 주로 집안에서 이루어지고 돌봄의 성격은 사랑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로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엄마, 딸, 며느리의 사랑의 힘으로 자녀와 노인을 돌보는 행위로 여겨져 ‘노동’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

가족의 규모도 줄어들고,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 돌봄의 수행공간은 집에서 집밖으로 확장되었다. 돌봄 제공자는 집안의 여성에서 어린이집, 학교, 병원, 양로원, 요양원, 장애인 시설 등 돌봄전문기관으로 바뀌었고, 보수를 지불하지 않는 사랑의 행위에서 보수를 지불하고 구매해야 하는 노동의 행위로 변화되었다. 이렇게 노동 시장에 진출한 돌봄노동자는 주로 여성이며 돌봄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자리가 임금이 낮고 조건이 열악하다.

“아줌마” 아니고 “선생님이요”라고 말하는 공익광고를 경남 서부권 돌봄노동자지원센터에서 본 적이 있다. 돌봄노동자를 부르는 호칭부터 존중으로 변화해보자는 내용이다. 그만큼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2022년 9월 기준으로 요양보호사 4만 1985명, 생활지원사 2545명, 아이돌보미 1640명, 장애인활동지원사가 7785명으로 경남지역 돌봄노동자가 5만명을 넘어섰다. 돌봄의 수요는 높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더 이상 집안에서 돌봄을 수행하기는 어렵고 사회화되었고, 그래야만 한다. 돌봄노동이 전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쉬운 노동으로 역기고 전문인력으로 인식하지 않는 이중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남에 있는 3개의 돌봄노동자지원센터가 2022년 시행한 돌봄노동자 권익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 불안한 고용, 높은 노동강도, 돌봄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용자 혹은 이용자 가족의 무례함 등의 고충을 겪고 있다. 자식은 아까워 시키지 못하는 농사일, 온갖 잡일을 해야 하는 노인생활지원사, CCTV로 감시되는 아이돌보미, 장애인 돌봄이 아니라 그 집 가사노동을 다해야 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대체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노인들의 어이 없는 요구와 이용자 가족들의 항의를 들으며 쉴 틈 없이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돌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돌봄노동자들은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사람을 마주하고 관계 맺는 과정은 강도 높은 감정노동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력을 바탕으로 애정과 열정을 다해서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돌봄노동자는 진정한 전문인력이다.

돌봄노동은 한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 누군가가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환자와 노인을 간호하고 보살피지 않는 한, 한 사회의 유지와 발전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사회구성원의 재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든 사회활동이 담보되는 것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부모를 돌봐야 하거나 아이 돌봄이 맡겨졌을 때 비로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삶과 노동을 매일같이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관계와 활동의 복합체인 돌봄노동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갈 때이다.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가능하다. 인식개선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처우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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