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한국의 여권 파워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한국의 여권 파워
  • 경남일보
  • 승인 2023.04.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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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旅券-Passport)은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신분과 국적을 증명하는 국제 신분증이다. 세계사적으로 여권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정확하게 고증해내기는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구약성경 느헤미야 2장 7절에서 9절에 걸쳐, 외국 여행에 필요한 문서 이야기가 나온다. 시기는 B.C. 420년 경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BC 465-424) 시절에 있었던 일화이다. “(7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이스라엘)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절)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9절)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로마 제국 시기에도 특정인을 위해 타국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를 발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로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유력자 혹은 군주가 특정 인물의 통행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글을 적어주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서들은 어디까지나 특정 개인에 대한 특혜였고 보편적으로 소속 국민들에게 발급되는 증서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대의 여권과는 개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고대에는 물론 20세기까지도 대개의 국가들은 출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넘어다닐 수 있었기에 여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여행 증서 형태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실물 중 하나는 쿠빌라이 칸이 외교 사절에게 발행한 마패 형태의 여권으로, 요즘으로 치면 외교관 여권에 해당하는 증표이다.

개별적인 여행 증명서가 아닌, 나름 불특정 다수에게 발급되는 근대적인 공문서로서 자리잡히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중세 때인 영국의 왕 헨리 5세 시절이다. 그는 무역 상업단이 여행 또는 무역에 관해 타국에 방문 시 해당 국가에 자국민을 책임져 보호해 달라는 여권을 발행하여 지급해주었다. 중세에는 선원수첩(Seafarer’s book)이라는 것이 여권과 유사했다. 선원수첩은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실제로 여권 대신 출입국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 기차의 발명으로 이동 수단이 빨라지고 이동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각국에서는 점차 국경 감시, 통과자의 원칙적인 신분 증빙과 기록 의무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20년이 되어서야 국제연맹에서 여권에 대한 표준안을 이끌어내게 되었으며, 출입국 시 여권 소지가 원칙화된 것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여권(여행 문서)이 보급돼 사람들이 ‘국적’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됐다. 지금과 비슷하게 출입국 관리가 엄격화 되기까지에는 또 긴 시간이 소요돼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까지 이른다. 이 무렵에 자국에 있는 외지인들은 일일이 국적 확인 차 외국에 연락하기도 어려웠기에 전원 국적을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처리했었다. 1차 대전 이전 여권에는 사진도 없었다. 사진 첨부가 필수가 된 이유는 독일 스파이가 미국에 침투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여권을 가졌다고 해서 아무 나라나 입국하거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국가에서 입국을 허가하는 비자를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위상에 따라 사전에 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달라진다.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나라가 몇 개국인지를 따지는 세계 여권 순위가 매년 발표되고 있다. 지난 1월 10일 미국 CNN에 따르면 영국 런던의 국제교류 자문 업체 ‘헨리앤파트너스(Henley & Partners)’는 이날 공개한 2023년 1분기 세계 이동성 보고서에서 한국의 ‘여권 파워(Henley Passport Index)’는 2위라고 밝혔다. 한국 여권의 파워는 2013년 13위 수준이었으나 2018년부터는 2~3위를 오가며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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