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93) 그림자 치료(문정)
강재남의 포엠산책(93) 그림자 치료(문정)
  • 경남일보
  • 승인 2023.04.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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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파 병원에 간 적 있다
병명을 모른다 했다
걱정하는 이들이 여러 치료법을 권했다

음악치료, 향기요법, 색채치료, 웃음치료 등에 매달렸다

귀로 코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눈으로 입으로 가져올 수도 없어서
누워서 지내고만 있을 때

멀리서 온 당신이 창백한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무의 깜깜한 우물 속에서
푸른 이파리가 고여 오르듯
꽃봉오리가 먹장구름의 무거운 엉덩이를 밀어 올리듯
당신의 손안에서 걸어 나오는 그림자,

그림자의 손을 잡고 일어선 날 있었다


시인은 없고 시만 남아서 우리를 적시는 건 쓸쓸한 일입니다. 가을이 가까이 있는 어느 날이었어요. 물든 나뭇잎보다 먼저 도착한 부고장을 보면서 종일 우울한 날을 보냈죠. 생면부지 시인인데도 남의 일 같지 않게 슬펐던 건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그의 이야기 같아서, 그보다 더한 누구의 모든 이야기 같아서였을 겁니다. 살다 보면 아주 먼 사람인데도 가까운 사람같이 느껴지는 일이 있어요. 노래에서, 그림에서, 글에서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지점에서 감정의 결이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런 마음일 겁니다. 시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 것은요. 몸이 아픈 시인은 좋다는 치료는 다 받았겠지요. 그것이 불길하고 두려운 꿈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때는 무엇에든 기대야 할 일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도, 가져올 수도 없을 만큼 육신은 지쳐갔을 겁니다. 그즈음 멀리서 온 당신을 보았을 테지요. 창백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손을 이끌던 그림자는 시인에게 있어 푸른 이파리였을까요, 꽃봉오리였을까요. 그림자의 손을 잡고 비로소 오랜 평안에 들었기를, 시인께 기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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