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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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4.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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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최근 진주지역에서 나온 시집(6)
이진주 시인은 시집 ‘몰래 들여다보며 꼬집고 싶다’(시와 편견)를 발간해 신작시인 대열에 섰다. 이 시인은 의령 출생으로 경남문인협회의 ‘경남문학’ 신인상(2018)과 계간 ‘시와 편견’(2021)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등단 후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간사로 일해오고 있다. 시 습작의 과정도 견실했거니와 문학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남이 따라하기 힘드는 모범을 보인다는 평이다.

그는 시를 쓰는 과정에 대한 시가 있어 시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는 시인임을 알게 한다. 제목이 ‘詩’다.

“오랜만에 그대를 껴안다가/ 삐끗/ 문장이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네// 때 되면 밥상 차리고/ 파고든 햇살 조각 뽑아내고/ 미세 먼지나 씻어주면 은유가 되는 줄 알았네/ 그냥 서 있어도 / 뜨거운 햇살이 얼음덩이가 되는 줄 몰랐네// 불쑥/ 뻗어온 행간의 벽 부딪혀/어쩔 줄 몰랐네/ 얼떨결에 잡은 뜨거운 국솥처럼// 행과 행을 지나치다/ 내 마음 삐끗하였네”

내 시를 써 놓고 읽어보니 문장이 삐끗한다는 것이다. 맥락이나 리듬이 삐끗거린다는 말이다. 밥상 차리듯 국 끓여 놓고, 김치 놓고, 젓갈 놓고, 생선 구워 놓으면 의당 한 끼 식단이 된다는 것인데 맛이 안 맞는 데도 있고 매일 매일 그것 천편일률이기도 하니 식구들의 숟가락 젓가락이 제대로 갈 것인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냥 딱 맞는 비유가 된다면 이미지가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시인은 시로써 말하는 것이니 더 뜸들여 써야겠다는 각오로 사는 여류! 그 여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친다.

‘詩’ 한 편이 더 있다. 두 줄짜리 시다. “몰래 들여다보며 꼬집고 싶다/ 때론 다독이고 싶다”

시 직품은 여성으로서 낳아 키우는 아이와 같을까. 몰래 들여다보니 기막힌 혈육이다. 꼬집어주고 싶다, 깨물고 싶어지기도 하다가 다둑여 주고싶다. 작품의 경우라면 반듯이 여며 주기도 할 것이다. 얼르기도 하는, 모성애의 발휘!

시집 첫머리에 놓여 있는 ‘기별’이 매우 서정적이다. 여성성을 보이는 시다.

“매화 향기 그윽한 집// 노모는 마을 앞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 돌아갈 시간이면 사립문 옆에 쪼그려 앉아/ 옷깃을 매만지고 있다.// 며칠째/ 매화꽃 툭, 툭 떨어지고” 이 장면은 너무나 낯익은 정경이다. 노모가 밖을 내다보는 것은 출장 간 아들을 기다리거나 대처로 공부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고 있어 보인다. 저녁때 사립문에 기대앉이 옷깃을 매만진다니 누구일까? 여성이니 낭군이기도 하리라. 옷깃을 매만진다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을 토론해볼 필요를 느낀다. 자식일까 낭군일까? 그런데 노모가 노부를 기다린다면 화자가 아들일 것인데 그 정경이 잘 맞지 않는다. 또 며칠 째 매화가 툭 툭 떨어지고 있으니 매일 일상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이름다운 정경이다. 이런 때를 두고 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기별’은 기다림에 대응하는 말이다. 노모의 며칠 째의 기별은 며칠의 기다림이고 며칠 분량의 행복일 것이다. 시는 행복을 잣는 물레일까? 그리움을 잣는 물레일까?

‘섣달’이라는 시도 짧지만 사색을 요하는 시다. “우주가 한 뼘 기울어져/ 해의 뒤태가 어제보다 야위었다.” 한 해를 셈하는 달이 12월이다. 한 해가 갔으니 해도 한 뼘이나 야위었을 거다라는 상상이다. 이것 저것 정경도 시가 되고 이것 저것 상상도 시가 된다.

이진주 시인은 그렇다고 얌전하고 사랑스런 언어로만 시를 쓰는 것이 아니다. “녹슨 목련꽃 떨어졌으므로/ 뜻 밖에 내 얼굴이 돋아난다.”고 하지 않는가. 시적 자아는 존재의 방식이므로 여류를 감성의 여류로만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다. 구름도 파도도 폭포도 자연에는 존재한다. 시인의 눈시울은 언제나 적셔 주는 것에 호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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