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사범학교 식당의 고봉밥
[경일춘추]사범학교 식당의 고봉밥
  • 경남일보
  • 승인 2023.04.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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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 시인·교육학 박사
오인태 시인·교육학 박사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매거진 형태로 펴내는 진주교육대학교 총동창회 기관지 ‘두류人 두류IN’ 의 특집 화보 ‘사진으로 보는 진주교육대학교 100년사’ 꼭지에 갈무리된 사진이다.

경남도 공립사범학교 시절이던 1928년에 찍은, 누렇게 빛바랜 이 사진이 눈길을 끄는 것은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은 밥그릇 때문이다. 사진에 박제된 시대, 20년대에서 30년대를 넘어온 초반 무렵은 세계 경제공황 속에서 이미 조선을 강점한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대륙 진출 야욕을 노골화하던 시기다. 일제의 무단 침탈에 조선 전체 인민의 생활고는 굳이 들추지 않아도 빤하다. 그런데 하얀, 그것도 고봉밥이라니.

외관은 알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을 짐작하건대,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안에 급식소가 있을 리 없고, 아마도 기숙사 안 공동식당 정도가 아닐까 싶다.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유달리 이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 건 어떤 유추의 실마리를 넌지시 건네주는 것 같아서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경하기까지 한 하얀 고봉밥은 어떤 특권을 표상하는 상징물처럼 보인다. 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이던 시대에 교복으로 상징되는 학생 신분 자체가 특권적 지위인 데다 기숙사에 딸린 공동식당의 하얀 고봉밥이라면 학생 중에서도 그야말로 선택된 이들이 아니겠는가.

진주교육대학교 동문을 통칭하는 두류인 가운데서 특히 사범학교 출신 중에는 법조·경제·행정·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지만 머리 좋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들어가는 데가 사범학교이고 교육대학이라는 통설은 사범학교 때부터 비롯됐을 터, 이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진에 찍힌 1928년의 이 학교는 진주사범학교의 전신인 경남도 공립사범학교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 표방으로 1922년 공표된 ‘조선교육령’에 따라 설립됐다. 일제 식민지 정책을 충실히 실천하는 초등교원 양성이 목적이었다. 사범학교의 하얀 고봉밥을 마냥 흐뭇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1923년 경남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한 진주교육대학교가 올해로 백 돌을 맞았다. 한국 현대사가 그런 것처럼 우리 진주교육대학교도 그 영욕의 세월에서 비켜날 수 없겠다. 성찰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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