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봄날 어느 퇴근 무렵
[경일춘추]봄날 어느 퇴근 무렵
  • 경남일보
  • 승인 2023.04.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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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 시인·교육학 박사
오인태 시인·교육학 박사

 

지금 꽃잎 내리고 있겠네/ 신안동 진주교대 미술관 앞 벚나무 꽃눈마다 맺혀있을 수많은 시선/ 그만큼의 사연들 분분히 나부껴 쌓여가겠네// 영문 모를 그리움 늘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던 건반처럼 가슴 뛰던 여학생 기숙사 계단 밑 음악관/ 붕붕 벌떼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두런두런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던 풍금 소리 또한 아련히 흘러나와 이즈음 자목련이 쫑긋 귀열어 듣고 있겠네// 그 꽃그늘 아래에서 누군가 시를 쓰고 있는지/ 혹은 편지라도 적고 있는지/ 오, 그때 첫사랑의 가누기 어려웠던 설렘 같이 전해오네 가슴에/ 이십 년의 세월 속을 날아왔을 홍조 띤 꽃잎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이 봄날의 퇴근 무렵 전문 -오인태

진주교육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펴낸 두류 동문 문인 작품집에 실은 시 두 편 가운데 하나다. 총동창회가 주관하는 다른 사업들과 함께 이 작품집 발간을 총괄하면서 진주교대 출신 문인이 이리도 많은가 하고 새삼 놀랐다.

일설에 따르면 서울의 한 종합대학을 빼고는 수적으로 가장 많은 문인을 배출한 학교가 진주교대란다. 제한된 지면과 예산에 무한정 실을 수는 없고, 몇 가지 기준을 정해 수록 문인을 선정했는데도 본문만 3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 시, 시조, 동시, 소설, 동화, 수필 등의 장르를 망라해 동문 문인 80인의 작품 134편을 실었다. 문단에 동문 문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해 추가한 사업이 모교 도서관에 동문 서가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두류 동문의 밤 개막식에서 68명의 동문 문인이 기증한 저서 265권과 함께 총동창회에서 모은 ‘100년 더 발전기금’ 2억 원도 학교에 전달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는 법이다. 교대를 나온 덕에 평생 교직을 생업 삼아 여태껏 밥 벌어먹고 이만큼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다. 지난주 금∼토요일까지 이틀 ‘두류 동문의 날’로 정해 모처럼 선후배 동문이 모교 교정에 모여 봄밤의 정취에 한껏 취해 회포도 풀었다. 한 세기 경남 초등교육을 견인해온 두류 동문으로서 자긍심과 모교 사랑을 다지는 시간을 보냈다. 잊지 못할, 오래오래 가슴 설렐 봄날의 추억은 하필 이 시기에 총동창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했던 내게도 또 살아내야 할 시간의 양식이 되리라.

아직 지지 않은 홍조 띤 꽃잎 한 장, 아니 둘, 셋, 넷, 다섯, 여섯…, 반가웠던 얼굴들이 꽃잎처럼 잠시 분분하다 아련해지며, 또 한해의 봄날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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