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포템킨 마을과 포템킨 경제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포템킨 마을과 포템킨 경제
  • 경남일보
  • 승인 2023.04.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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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포템킨 마을과 포템킨 경제
 
 



포템킨(그리고리 알렉산드로비치 포템킨 타브리체스키)은 러시아 제국의 귀족 출신 정치인, 관료, 군인 출신으로, 여제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궁정 인사였고, 여제의 연인이기도 했다. 크림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는 공로를 세웠고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복무했다. 또한 포템킨은 당시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 지 얼마 안 된 옛 크림 칸국의 통치를 맡기도 했다. 그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1787년 어느 날 예카테리나 여제가 포템킨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을 시찰하겠다고 나섰다. 해당 지역 총독이었던 그레고리 포템킨은 낙후된 크림반도 일대에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마을을 잇따라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 예카테리나에게 낙후되었던 영지가 자신 치하에서 크게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자신의 궁정에서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대규모의 개발을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포템킨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그의 영지를 관통하는 드네프르 강에서 바지선을 타는 것이 유일한 순방 계획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여제는 실제로 마을에 들어가지는 않고 오로지 배에서 강 유역에 있는 마을과 도시를 바라볼 계획을 미리 간파하고, 바로 가짜 마을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여제가 배를 타고 바라볼 드네프르 강 유역에, 이곳이 부유하고 발전된 곳인 마냥 위장하여 허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일화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조어가 ‘포템킨 마을’이다. 초라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라는 뜻을 갖게 된 관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구소련이 냉전 시대에 이 수법을 사용했다. 흐루쇼프는 미국에 비해 얼마 되지도 않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지고 미사일로 미국을 깡그리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라며 60년대 초에 수많은 공갈 협박을 해대곤 했었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이 핵무기를 엄청 늘리면서 미국보다 더 많은 수의 핵무기를 가졌었다.

군대에서도 미리 각본을 짜놓고 각본대로 하는 대규모 군사 동원 훈련이나 특수부대 부대원들이 강인함을 과시하기 위해 격파술 시범이나 격투술 등의 약속 대련을 선보인다든지 하는 대중들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하는 훈련을 ‘Potemkin training’이라고 한다. 북한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평양의 일부 지역 외엔 여행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나 휴전선 근처 보여주기식 위장 마을 조성하고 열병식에서 가짜 무기를 선보이는 등의 초라한 현실을 숨기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거나 상황을 연출하는 행태들을 보아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겉은 멀쩡하나 실속은 전혀 없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두고 ‘포템킨 경제(Potemkin Economy)’라는 표현을 쓴 이후로, 경제 용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하여 서방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 속에서도 루블화 가치가 연일 폭등 중인 러시아 경제를 비꼬는 말로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한편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 대학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들을 비하하면서 금융완화 정책을 비롯하여 물론 1조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 법인세 추가 인하 등의 공약에 대해 ‘실체가 없는 포템킨 마을’이라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치, 경제, 행정 분야 등에서 ‘포템킨 마을’ 사례들을 흔하게 목도하게 된다. 행정에서는 보여주기 식의 ‘전시행정’이 그러하고 사상누각과도 같은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이나 공약들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 국내 경제성장률을 7%로 높이고,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 시대를 열며 세계 7위권의 선진대국을 만든다는 이른바 ‘747 공약’이 그러하고 문재인 정권이 시장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개선해 가계소득을 끌어올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그 예들이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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