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K-Paper 한지의 우수성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K-Paper 한지의 우수성
  • 경남일보
  • 승인 2023.05.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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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서 문경한지 제작 시연과정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사람이 무엇을 기록하는 재료로서 돌·금속·찰흙 외에 동물의 가죽이나 뼈, 나무껍질·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했다. 이러한 기록을 위해 쓰인 재료들 중에서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했다. 이 방법이 고안된 것은 BC 2500년경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파피루스는 기록하는 재료로서 당시 다른 어떤 것보다 편리하였으므로 중국의 제지술이 유럽에 전해진 8세기경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소아시아에 걸쳐 널리 보급됐다. 현재 영어 paper를 비롯해 유럽 나라들의 ‘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파피루스에 연유한다. 이 때문에 파피루스를 종이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엄밀한 의미의 종이라고 규정짓기는 곤란하다. 종이의 발명자는 현재까지 정설로 인정되는 바로는 AD 105년에 중국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다.

우리 선조들은 중국으로부터 종이 제작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 삼국시대부터 독자적인 방식으로 제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종이 재료로 마(麻), 죽순(竹筍) 등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우리 선조들은 리그닌(Lignin)과 홀로 셀룰로오스(holo-cellulose) 성분이 이상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닥나무(Broussonetia kazinoki)를 사용했다. 여기에 천연 재료인 잿물과 닥풀(황촉규) 등을 사용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천년 이상 오래가는 중성지인 한지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751년 신라의 종이로 인쇄된 것으로 판명돼 천년이 넘어서도 현존하는 한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1300여년에 이르는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가 한지에 담겨있어서 이제는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에서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대영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고미술품이나 고가구를 옛것 그대로 복원하고, 십여 세기 전의 고서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마법의 재료로 한지(韓紙)를 찾고 있다. 우리는 그저 조선 사대부들의 사서삼경이나 절간의 불경, 혹은 한옥의 문풍지 정도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온 한지에서 외국 전문가들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지 아닐 수 없다. 박물관의 복원사들은 천연종이를 으깨고 짓이겨서 낡은 조각상과 가구, 도자기, 그림 및 액자 등에 생긴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고, 그 겉 표면을 세월의 더께가 밴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데, 종이에 어떠한 화학성분이나 유료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베테랑 복원사들로부터 ‘고품격 복원지’란 평가를 받은 우리의 전통한지는 신성로마제국시대 막시밀리안2세가 쓰던 가구를 복원하는데 깔끔한 마무리로 각광받았고, 로스차일드 컬렉션 복원에도 긴요한 재료로 사용됐다. 이외에도 승리의 여신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텐베르그의 성경, 렘브란트의 드로잉, 백자 등도 천연 종이를 이용한 복원사들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멋진 생명력을 얻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사들은 세월에 퇴색된 코란 경전의 페이지 한 장 마다 우리의 전통한지를 넣어 소중한 예술품으로 보존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예술품 복원을 위해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화지를 공급받았으나, 일본산 화지에서 일부 화학성분이 발견돼 예술품 복원에 적합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자, 루브르 박물관 실무진이 자연산 한지를 소량 생산하는 한국에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한국의 전통 한지(韓紙), 일본의 화지(和紙), 중국의 선지(宣紙) 가운데 문화재 복원용에 가장 적합한 것은 한지라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3개국 천연종이를 넣고 실험한 결과, 한지가 ‘수치 안정성’ 1위로, 가장 뛰어난 복원력을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지는 수축·팽창·복원 등 이러한 수치 안정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질긴 특성 때문에 세계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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