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디지털 세상에서 온 피자 한 판
[경일춘추]디지털 세상에서 온 피자 한 판
  • 경남일보
  • 승인 2023.05.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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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수필가

 

마법처럼 머나먼 타국 땅에서 피자 한 판이 왔다. 오래전 국산 군용항공기 개발에 매달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시절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먹는 밀가루 음식이 몸에 좋을 리 만무했지만 그나마 보상받는 마음으로 먹고 버텼다. 회사를 퇴직한 뒤론 치즈 냄새 고약한 피자와 멀어졌고 몸에서 그 냄새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마트폰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와 함께 피자 한 판 상품권이 배달됐다. 항공기 개발이 성공이냐 실패냐며 전전긍긍하던 그 때 먹던 그 피자가 생각나서인지 아니면 내가 보낸 글에서 피자라도 한 판 먹기로 했다는 것을 보고 보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는 지금 국산 항공기를 운영하는 외국 공군기지에서 기술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군에 있을 때 거의 모든 항공기는 외국산이었다. 한국 공군이 어느 수준에 이를 때까지 항공기 제작사의 요원이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썩 편치 못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기술보안이니 비밀사항이라며 고자세였고 툭하면 사용자 미숙이라고 고액의 수리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고가의 항공기를 만들지도 운영하지도 못하는 기술후진국의 슬픔이었다. 우리가 만든 항공기를 수출한 후 기술지원 요원으로 일하는 것은 많은 엔지니어들의 꿈이다. 항공기에 대한 기술적 지원능력도 있어야하지만 그곳 군인들과 소통능력을 갖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후배의 평소 인간관계나 친화력을 생각하면 어떤 악조건에서도 성공적인 기술지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렵고 바쁘게 근무하며 피자 한 판을 보내준 것이 무척 고맙긴 했지만 디지털세상의 열쇠를 갖추지 못한 사람에겐 화중지병이었다. 보내온 디지털 상품권을 피자로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피자가게에 전화해서 현물로 바꾸고자 한다고 하니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한 다음 상품권을 등록해야 한단다. 몇 번의 시도에도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앱을 깔고 마치 묵찌빠 같은 질문과 답변으로 반시간 넘어 씨름했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돼서야 겨우 상품권을 등록하고 주문한 피자를 찾으러 매장으로 간다. 키오스크로 상품을 고르고 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 발짝 한 발짝이 진창이고 진땀이다.

집으로 와 포장을 펼치고 있는데 전화를 하더니 “피자 잘 사셨어요?”하며 눙친다. “힘들다 힘들어. 다음엔 그냥 피자를 보내라”하면서 웃었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한다. 디지털 현관문을 열줄 모르면 이젠 피자 한 판도 사먹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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