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항룡유회(亢龍有悔)
[경일춘추]항룡유회(亢龍有悔)
  • 경남일보
  • 승인 2023.05.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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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
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


지금은 성당에 다니지만 한때 영업을 할 때 점을 보러 다닌 경험이 있다. 영업은 매달 이뤄야할 목표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 까지 다녔다.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 필요했다. 나의 확신이 조직원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점집을 다니다 보니,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인간의 운명은 과연 정해져 있는 것인가, 운과 때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도 일었다.

강현의 ‘좌파 명리학’을 읽고 좀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대원 선생을 만났다. 그 뒤 출판사를 시작하자마자, 서 선생의 저서 ‘새로 쓰는 주역강의’를 기획했다. ‘새로쓰는 주역 강의’는 보편적인 삶에 대해 말한다. 인생 80년 우상향만 있겠는가. 누구나 굴곡진 삶을 살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언제 엎드려야 되고 언제 날아야 되는지 판단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역 64괘중 첫번째인 건괘에서 원형이정을 삶의 출생 성장 성공 마무리를 용에 빗대어 잠룡 현룡 비룡 항룡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용들에는 물속에 잠겨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잠룡, 들판에 모습을 드러내 활동하는 현룡, 드디어 때를 만나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룡, 마지막에 하늘을 다 오른 항룡이 있다는 것이다. 항룡유회(亢龍有悔)는 너무 일찍 오른 용이 후회를 한다는 뜻.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도 뉘우칠 일이 있다는 것인데 누구나 늙고 자리에서 물러나면 잘했거나 못했거나 후회를 하게 마련인 것이다. 영화 ‘일대종사’에서 무술 고수로 나오는 양조위의 대사 ‘인생에 후회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후회 없는 인생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그 후회가 잔잔하고 평화롭고 아련한 것이길 바랄 뿐이다. 주역이 이 세상에 나타났던 3000년 전에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경계했으리라 생각해보니, 놀랍다. 때가 아닌데 날뛰다 물에 빠진 잠룡이나 너무 일찍 오른 항룡이나 올라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거늘 주역은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역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힘든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음에 있다.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역학의 고전이지만 알고 보면 인간으로서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밝힌 처세서에 가깝다. 저자인 서대원 선생이 역학자의 길로 들어선 뒤 ‘천 번 쓰고 만 번 읽는다’는 천필만독(千筆萬讀)을 실천했다는 사실도 감동적이다. 저자의 쓰기와 읽기처럼 우리 사는 인생도 강물이 천천히 흘러가듯, 나무가 조금씩 자라듯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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