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보릿고개
[농업이야기] 보릿고개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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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밥 한번 먹을까요?”

서로가 조금 아는 사이가 되면, 식사 한번 하자는 것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이러한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가수 진성이 불렀던 보릿고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노래 가사 구절마다 어린 시절의 배고픔에 대한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간혹 밥 먹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대부분이 꽁보리밥이었지만, 이것마저도 부족할 때도 있었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물 한 바가지에 소금을 타서 마시면서 “나는 배가 고프지 않으니, 너희들 많이 먹어라” 하시면서 밥그릇을 자식들에게 건네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겪었던 그 시절이 보릿고개를 갓 지났을 무렵이다.

보릿고개는 1960대와 1970년대에 우리나라 농촌에서 겪었던 가난한 실상을 나타내는 아픈 단어로, 지난해 수확했던 곡식이 없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촌 생활이 가장 어려웠던 음력 4월과 5월을 말한다. 이러한 보릿고개는 1970년대 중반 통일벼의 보급과 함께 배고픔에 대한 아픈 기억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시골살이가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며칠 전 시골에서 동창회가 있어 동네 들판을 거닐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들판에서 보리가 재배되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에 가축 사육을 위한 사료작물과 마늘과 같은 경제작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빈 농경지로 남아 있었다. 한때는 풍요의 상징이었던 들판이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으로 도시지역의 빈집비율은 6.0%인데 비해 농촌지역은 12.6%로 도시지역의 두 배 이상이다. 또한 고령농가 비율은 2022년 기준으로 49.8%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65세 이상이다. 머지않아 우리 농촌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찾아든다. 만약 농촌이 소멸한다면 수입농산물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할 것이고, 먹거리 안전도 책임질 수 없으며, 물가 불안정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잠재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농촌은 보존돼야 한다.

농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올해부터 시작되는 고향사랑기부금 제도가 있다. 이는 개인이 거주지 이외의 지자체에 연간 500만원 한도로 기부를 하면 기부금에 대해 세액을 공제해 주는 제도이다. 개인이 지자체에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10만원까지 전액, 초과분은 16.5%)도 받고, 기부금액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받을 수도 있다. 즉 기부자는 세액공제와 함께 답례품도 받고, 고향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향사랑기부금 제도가 활성화돼 농촌소멸을 예방하는데 기여하고, 우리 부모 세대가 겪었던 보릿고개와 같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바람결에 흩날리는 보리밭길을 거닐어 본다.


박길석 경남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연구협력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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