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경남도립극단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 연습
[현장을 가다] 경남도립극단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 연습
  • 백지영
  • 승인 2023.05.18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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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음악과 오브제… 조화가 빚어낸 반짝임

판소리 수궁가 현대적 재해석
19일부터 사흘간 정기 공연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누구나 즐기는 작품될 것”

“나는 저기 수궁에서 토선생을 뫼시러 온 별주부, 자라요.(…)제가 살고 있는 수궁 세상이 꽤나 살만한 곳입니다. 아, 인간들 말로 하자면 복지가 좋다고나 할까요?”(자라)

“아…. 말이 너무 길어.”(토끼)

“요즘 우리 수궁 용왕님께서는 이 세상의 인재들을 영입하시는 일에 아주 큰 관심이 있으시죠.”(자라)

“안 사요.”(토끼)

지난 17일 오후 3시께 진주시 칠암동 경남도립예술단 창작관 연습실. 경남도립극단 올해 첫 정기공연 ‘앙금당실 토별가’를 이틀 앞둔 이날 공연장 밖 마지막 연습에 나선 배우들이 작품에 섬세함을 더하는 데 집중했다.

별주부전을 생각할 때면 흔히 따라오는, 오랜 세월을 품고 있을 법한 묵직한 이미지는 연습을 지켜본 지 몇 분 만에 깨졌다.

약장수처럼 화려한 언변으로 용궁행을 유혹하는 자라를 향해 토끼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안 사요”라고 내치지만, 용왕이 ‘월세도 전세도 아닌 자가’ 집 한 채를 약속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앙금당실 토별가’는 자라의 느린 걸음인 ‘앙금(엉금)’과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나타낸 ‘당실(둥실)’을 의미하는 ‘앙금당실’한 토끼와 별주부의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브제 음악극’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설명만으로는 어떤 유형의 공연인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직접 지켜본 작품은 ‘종합 예술’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었다. 새로운 제작진 투입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정기 공연으로 선보였던 창작극 ‘눈물지니 웃음피고’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리어왕’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지난 17일 오후 진주시 칠암동 경남도립예술단 창작관 연습실에서 경남도립극단원들이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정웅교수습기자

다섯 배우의 대사 톤과 노래는 연극·뮤지컬의 그것이었지만, 여기에 소리꾼의 ‘수궁 만물’ 등 판소리 수궁가의 대목이 더해지니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천·인형·소품 등 오브제까지 더해지니 공연 자체가 새로운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졌다.

별이 반짝이는 듯한 양악 풍 배경음 위로 판소리가 차오르고, 어두운 무대에 홀로 선 소리꾼 주변으로 빛나는 물고기 인형을 든 배우들이 하나둘 등장해 무대를 누비며 그림자를 만드는 장면은 이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별천지를 보는 듯했다.

조현산 연출은 “모두 내용을 아는 수궁가를 각색해 모든 연령대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며 “판소리와 현대 음악, 인형, 그림자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으니 어떤 분이라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오후 진주시 칠암동 경남도립예술단 창작관 연습실에서 경남도립극단원들이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정웅교수습기자


“저 시퍼런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오색 찬란한 새 세상이 있다 그 말씀이요?”(자라)

초등학교 고학년생 키 정도는 될 법한 크기의 토끼 인형과 그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작아 보이는 자라 인형 뒤에 선 배우들은 분주하게 각자가 쥔 인형의 관절을 움직이며 대사를 이어간다.

작품 속 인형·소품은 어린이용 동화·만화에서 볼 법한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기괴한 미학으로 이름난 영화감독 팀 버튼의 작품들이 괜스레 떠오른다.

인형의 머리와 왼 팔목을 잡은 배우가 대사를 하며 전진하자, 척추와 오른 팔목 담당 배우, 두 발목 담당 배우도 합을 맞춰 나아간다. 무릎을 꿇고 앞뒤 좌우로 움직이는 일은 다반사. 괜히 반바지 차림의 배우가 착용하고 있는 무릎 보호대에 눈길이 갔다.

오정훈 배우는 “누군가와 함께 인형을 잡고 그림자를 만들어 나가는 만큼 앙상블, 하모니가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서로 다른 사람이 토끼를 잡고 대사, 소리를 해도 이질적이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도립극단은 그간 경남도립예술단 연습실을 품고 있는 진주 경남문예회관에서 정기 공연을 통해 신작 초연을 한 뒤 도내 시·군을 돌며 순회공연을 해왔으나, 이번에는 일정상 문제로 진주 정기공연 일주일 전 김해에서 순회공연 형태로 첫선을 보였다.

박시우 배우는 “연습하다 보면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 옆의 배우들이 정말 예뻐 보였는데 김해 관객들도 같은 평을 남겨주시더라”며 “배우·인형·오브제가 모두 잘 어우러져 보시는 동안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한편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정기공연 ‘앙금당실 토별가’는 19일 오후 7시 30분, 20일 오후 2시·5시, 21일 오후 2시 등 총 4차례 진행된다. 예매는 인터파크를 통해 할 수 있으며, 공연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17일 오후 진주시 칠암동 경남도립예술단 창작관 연습실에서 경남도립극단원들이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정웅교수습기자
지난 17일 오후 진주시 칠암동 경남도립예술단 창작관 연습실에서 경남도립극단원들이 정기 공연 ‘앙금당실 토별가’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정웅교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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