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의학 연구의 최고봉-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의학 연구의 최고봉-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 경남일보
  • 승인 2023.05.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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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금수저 출신의 공학을 전공한 천재, 억만장자, 가장 미국적인 기업가, 비행사, 영화제작자, 영화감독, 자선가...젊은 시절부터 모험적이면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사람. 그러한 좌충우돌적인 극단의 삶의 여파였음인지 그의 인생 중후반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피폐해져 극단적인 대인기피증을 보이며 타인과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은 채 방구석 폐인의 모습을 보이다가 불행한 삶의 결말을 맞이한 사람. 그는 1953년에 세계 최고의 의학·생물학 연구기관이자, 미국 최대의 민간 생명공학 연구지원재단인 하워드 휴스 메디컬 인스티튜트(HHMI-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를 설립하여 유업으로 남긴 하워드 휴스(Howard Robard Hughes Jr.)이다.

하워드 휴스의 아버지 하워드 휴스 시니어는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였다가 석유를 채굴할 때 쓰는 거대한 드릴을 발명해서 엄청난 거부가 되었고 텍사스 굴지의 공구 제작 기업 Hughes Tool Company의 대표였기에 하워드 휴스는 1905년에 금수저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하워드 휴스도 기계공학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는데, 이미 12살 때 아버지의 회사에 있던 기계 부품들을 조립해서 모터가 달린 전동자전거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922년 16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 뒤인 1924년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하워드 휴스는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다. 18살의 어린 하워드는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수학과 공학 수업을 청강했고 텍사스주의 명문 라이스 대학교에 기부입학으로 진학해 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자퇴한 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영화제작을 위해 할리우드로 떠난다. 어리고 야심 많은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는 할리우드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처음에는 코미디 영화를 찍었으며 흥행에도 성공하고 아카데미상에 후보로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에비에이터’라는 영화를 통해 나타나듯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직접 시험 비행하는 등 모험심이 많고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워드 휴스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대작을 만들어내겠다는 욕망이 있었으며 그의 욕구는 1927년부터 제작된 1930년 작 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100만 불이 넘는 제작비가 들었으며 3년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 하워드 휴스는 조잡한 모형에 실망해 결국 진짜 비행기를 이용해 촬영했다. 제작과 광고비에 무려 3백만 불이 더 들어갔지만, 8백만 불의 수익을 거두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외아들이었던 그는 결백증을 심하게 앓았던 어머니의 특이한 위생 관념 탓인지 그도 비슷한 강박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는 ‘세균공포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 여러 가지 괴벽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워드 휴스는 어린 시절부터 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비록 자신이 하는 사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기초의학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랜 기간의 고민과 노력 끝에 1953년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를 탄생시켰다.

유사한 연구기관들이 많지만, 연구성과를 양이 아니라 질로만 평가한다면 HHMI는 단연 독보적 성과를 낸다. 단 300∼400명의 과학자들이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나 된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단 두 해를 제외하고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HHMI 졸업생 가운데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도 17명이나 된다. 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은 4∼5년에 한 번씩 미국 내 100여 개의 대학·연구기관에서 추천한 소수의 후보자들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심사 기준으론 과거의 경력이나 지명도와는 상관없이 기발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우선시된다. 일단 선발되면 별도의 연구 신청서나 보고서 없이 매년 100만∼2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 유능한 과학자가 모든 잡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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