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97)빙고 - 임수현
강재남의 포엠산책(97)빙고 - 임수현
  • 경남일보
  • 승인 2023.06.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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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개 이름 빙고

빙고야 부르면

두 발을 손처럼 내밀어

책상 밑에서 양말을 물어뜯다가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우리 집 개 빙고는

빙고가 되기 전에

멍이 토리 미요 호두 하산이었을지 몰라

우리 집 개 빙고는 섭섭해하지 않아

자기를 누구로 부르건

하나도 안 중요하니까

지금 빙고는 칸을 다 맞추고

나를 만나러 온 거니까

빙고야 부르면

달려와 꼬리를 흔들 테니까


종이와 펜이 있어야 해요. 정사각으로 가로세로 5개의 칸을 만들어요. 칸에는 나라 이름이나 지명, 연예인 등, 특정 주제를 가진 단어를 써요. 그런 후 상대와 번갈아 가며 단어를 말해요. 이때 자기가 적은 단어가 나오면 동그라미를 그리죠. 그렇게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한 줄이 완성되면 ‘빙고’라고 외쳐요. 이겼다는 뜻이죠. 특별한 법칙이 없고 필요한 것도 없기에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많이 한 게임이에요. 우리는 주로 영어단어로 빙고 게임을 했는데요. 선생님께 놀이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서였어요. 시인에게 이날 빙고 게임은 개 이름이 주제였나 봅니다. 빙고가 완성되기 전에 멍이 토리 미요 호두 하산 등 많은 단어가 나왔을 테죠. 그런 모르는 이름을 불러주어도 빙고는 섭섭해하지 않아요. 자기를 무엇으로 부르건 칸을 다 맞추면 틀림없는 빙고가 될 테니까요. 빙고가 되어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올 테니까요. 믿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의 관계가 굳건할 거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일요. 그 시절을 더듬으며 각자의 빙고를 데리고 산책에 나서는 날이 되었으면 해요.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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