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천오백년 숨결이 베인 한산모시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천오백년 숨결이 베인 한산모시
  • 경남일보
  • 승인 2023.06.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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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여류 소설가 김말봉이 쓴 시에 사위인 지휘자 금난새의 부친 금수현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 ‘그네’의 1절 가사이다. 삼베가 전국적으로 생산되는데 비해 모시는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그중에서 서천군 한산면 일대의 8개 마을인 남포, 부여, 비인, 서천, 임천, 정산, 한산, 홍산 등 저산팔읍으로 불리는 고장이 가장 유명했다. 모시의 재료가 되는 모시풀은 다년생으로 뿌리 쪽 줄기가 황갈색으로 변하며, 밑의 잎이 시들어 마를 때 수확한다. 보통 1년에 3번 정도 수확하는데 5월∼6월초, 8월초∼8월 하순, 10월초∼10월 하순이며 두 번째 수확한 이수(二收) 모시가 품질이 제일 좋다. 그리고 모시는 보통 7새에서 15새(보름새)까지 있는데 10새 이상을 세모시라 하고 숫자가 높을수록 고운 최상품으로 여긴다. 1새는 30㎝ 포 폭에 80올의 날실로 짜여진 것이다.

모시의 제작 과정은 꽤 복잡하다. 우선 재배하여 수확한 모시를 훑고 겉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이것을 모시 째기라고 한다. 쪼갠 모시 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모시삼기라 한다. 이 모시삼기의 과정은 실의 균일도가 가름되는 과정으로 한산의 모시삼기기술은 우수하여 균일도가 일정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을 체에 일정한 크기로 서려 담아 노끈으로 열 십(十)자로 담아 모시 굿을 만든다. 모시 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모시매기인 풀 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 마지막으로 모시표백은 물에 적셔 햇빛에 여러 번 말려 백저포, 곧 흰 모시가 된다.

모시제작과정 중에서도 모시 째기는 모시를 짜는 사람들의 정성과 인내심을 대표하는 과정이다. 입으로 하는 작업인 데다 세모시를 만들기 위해 더욱 정성을 쏟아야 했기에 만드는 사람들의 입술과 이가 성할 날이 없다고 한다. 이때 얼마나 세세하게 쪼개느냐에 따라 모시의 품질이 결정된다. 가장 가는 모시인 상저를 최상품으로 친다. 상저를 흔히 세모시라 부르는데, 세모시는 밥그릇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갈 정도로 가늘고 고와 최고의 옷감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산모시는 예로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어 왔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백옥같이 희며 우아한 여름철 전통옷감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땀과 정성을 들일수록 더욱 섬세하고 우아하게 완성되는 한산모시를 짜는 기술은 1967년 전통섬유 부문 중 가장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한산모시짜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모시는 머리카락보다 곱게 짜여진 모시로 삼국시대에는 30~40승, 고려시대에는 20승, 조선시대에는 15승까지 세밀한 모시가 짜였다. 현재 최고로 곱게 짠 것은 12승 모시이다. ‘삼국사기’에 “신라에서는 삼십승저삼단(三十升紵衫段)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광폭세포는 폭이 넓은 모시로 현재 한산지역에서 62㎝까지 제직하고 있다. 저포교직은 모시와 다른 천연섬유와 함께 섞어 짠 옷감으로 저마교직, 사저교직, 면저교직 등이 있다. 한국 최고의 천연섬유인 한산모시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체험하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시옷과 모시 공예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 한마당이 한산모시문화제이다. 이 축제는 1989년 ‘저산문화제’로 시작했는데, 1998년 제9회 대회를 맞아 전국 18대 관광문화제이자 충청남도 3대 문화제로 선정되면서 이를 계기로 ‘한산모시문화제’로 축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33회째를 맞은 한산모시문화제는 ‘1500년 한산모시, 이음과 만남’이라는 주제로 지난 6월 9일~11일까지 열렸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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