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벽화가 이상빈 어르신 “마지막 날까지 그리련다”
81세 벽화가 이상빈 어르신 “마지막 날까지 그리련다”
  • 최창민
  • 승인 2023.06.13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낚싯배 몰고 간판집 열었지만…결국 다시 붓을 잡은 그림쟁이
물감통 들고 사다리 올라 붓질…도내 곳곳 담장에 개인전 펼쳐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4∼5m 높이의 위험한 사다리 위에서 물감통과 붓을 들고 열정 하나로 버티며 벽화를 그리는 어르신이 화제다. 주인공은 이 시대 몇 남지 않은 최고령 벽화가 이상빈 씨, 올해 어르신은 81세이다.

 

그는 최근 하동군 횡천면 애치마을에서 20일간의 마을벽화작업을 마무리하고 돌아와 진주시 평거동 자택에서 모처럼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상빈 어르신은 도내 곳곳 마을을 다니며 담장에 벽화를 그린다. 거주지 평거동 마을에는 담장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는 이웃의 한 주택가에 다가가 “진주 남강과 진주교 촉석루를 그린 것”이라며 그림을 가리켰다. 지금은 새 교량으로 바뀌어 사라진 옛 진주교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고 했다. 그 앞에는 ‘눈쌓인 나무에 홍매화가 핀 절정의 장면’이 표현돼 있었다. 이 외에도 집 주변에는 흰 파도 밀려오는 바다 배경에 갈매기 나는 풍경, 수국이 만개한 어느 공원의 아침,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진주시 캐릭터 ‘하모’까지….

이씨는 진주에서 벽화를 그려 생계를 꾸려가는 몇 안 되는 고령의 벽화가이다. 진주토박이로 중학교 중퇴, 정식 미술공부를 하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요청이 있는 마을을 오가며 벽화를 그려주고 일정금액을 받아 생계를 잇는다. 요즘엔 입소문이 많이 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팔순에도 자식들에게 손 안벌리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는 1959년 지역명문 진주중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 재학 중 ‘등록금 120원’이 없어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뒤돌아보며 걸어 나와야 했다.

1960년, 17세 때 무작정 상경한 그는 구두닦이를 하거나 짜장면집에서 일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종로 2가 당시 우미관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렸다. 월급도 없었지만 먹고 자는 것이 가능했기에 그나마 행복했다. 이도 잠시, 군복무 후 간판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낙향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동명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렸다. 기회가 왔다. 진양호에서 30인승 낚싯배를 운영했다. 돈이 저절로 들어왔다. 낚시 포인트를 잘 아는 그를 찾는 이가 줄을 섰기 때문.

배를 장만하기 위해 지역 어르신께 빌린 돈 거액을 1년 만에 다 갚아냈다. 박 회장님으로 통했던 어르신은 그에게 “‘내 돈 떼먹고 도망간 놈이 수 십명인데 자네처럼 하루도 안 늦고 원금에 이자 쳐서 갚는 이는 처음 봤다’며 어깨를 두드려주더라”고 했다.

그때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했다. 평생 한이 된 교육에 대한 열정은 2남 1녀 자녀를 공부시키는 것으로 갈음했다. 딸이 미술공부를 해서 관련분야에 일하고 있고 사위는 현직 미술교사다.

그는 꿈의 터전, 진양호를 떠나야 했다. 상수도보호구역이 되면서 배와 시설을 전면 철수해야 했기 때문.

운명처럼 다시 붓을 들었다. 촉석루 앞 도로 아래 그린 ‘논개 그림’이 그의 재기작이다.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그러기를 20년, 바람따라 산 세월, 팔순이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수 천점의 벽화를 그려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5년 전 사량도에서 그린 460m짜리 벽화, 한 달 보름동안 아내와 함께 숙식하며 그린 작품이다.

최근엔 하동 애치마을에서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전체 마을담장에 벽화를 6일 동안 그렸다. 사다리를 두개, 무거운 물감통과 붓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그야말로 진땀나게 그렸다. 뒷날 다시 가보니 그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웬일일까. 벽화를 완성한 뒤 코팅작업을 위해 인부를 시켜 덧칠한 페인트가 코팅이 아니라 수성페인트였던 것. 그림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이씨의 실수는 아니었다. 결국 6일 동안 다시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는 “밥은 안 먹어도 붓은 놓지 않는다”고 했다. 열정과 희망으로 사는 그의 단면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얼마 남지 않은 이 생(生)다하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정규교육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고 생계를 위해 그렸지만 이제 자신의 한 인생이 돼 버린 그림쟁이 어르신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표정에 묻어났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팔순의 이상빈 벽화가가 그의 거주지 평거동 마을 담장에 그린 벽화를 가리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